[김대식·김혜연의 AHA]송길영이 그리는 미래, 주인공은 '더 나아지는 개인'
편집자주
아시아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생성형 AI가 예술창작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공학자와 예술인의 관점에서 고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매월 한 차례씩 김대식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가 예술창작인과 대담하거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코너 제목에 들어가는 'AHA'는 'AI, Human & Art'를 뜻합니다. 생성형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뜨겁게 탐구하는 김대식 교수, 생성형 AI와 무용을 과감하게 접목시키고 있는 김혜연 안무가를 통해 AI와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묵직한 화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캐내어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들여다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일. '빅데이터' 하면 떠오르는 송길영 작가가 하려는 일은 결국 이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그리는 '마음의 지도'야말로 급변하는 세상과 사회에서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될지도 모르겠다. AI가 사람의 삶 자체가 되어가는 시대에 그가 제시하는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며 어떻게 살기를 조언하고 있을까. 송 작가의 해답은 나와 당신, 즉 고유의 경쟁력으로 독립된 '개인'에 있는 듯하다.
-명함을 보니 본인을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라고 소개하십니다. 통상적으로는 '작가'로 불리시죠.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캐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걸 '마이닝 마인드'라고 정의했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합의가 변천되는 점을 관찰하고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30년을 회사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29년 차, 30년 차에 들어서면서 제가 그동안 행복했는지가 궁금해졌죠.
당시에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이 나오는 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그런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죠. 이번에 네 번째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10여년 동안 책을 써 온 것인데, 이게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이걸 업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회사를 박차고 나오신 뒤로 삶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셨을 거 같아요.
▲동료들과 함께 기업을 만들었죠. 선후배들이 모여서 '같이 사회를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어는 순간, '이건 형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았지만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리고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게 됐어요.
그러면서, 일의 형태라는 것은 다양할 수 있으며 기업이라는 형식이 아닌, 다른 많은 형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생애가 짧았던 지난 시대에는 한 조직에 들어갔다가 나가는 것으로 끝이 났고, 조직이 개인보다 우수하다는 사고방식이 우세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기업은 예전 같지 않죠. 혁신이 지속되고 있고, 이런 흐름에 따라서 합쳐지거나 쪼개지는 일이 계속돼요. 그리고 인간이 오래 살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조직보다 개인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죠.
이런 겁니다. 첫 번째 직장에서 다 해봤네. 그럼 두 번째 직장에서도 한 번 해보자. 또 세 번째에서 해보자. 이런 과정을 연결하면 전체 인생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특정 조직에서의 삶이 인생의 작은 부분이고, 개개인이 일하는 방식이 더 중요한 쪽으로 역전된 시대인 거예요. 증강된 거죠. 이제는 개인의 이름 자체가 더 많이 불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아 출간한 책이 '시대예보:핵개인의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그 사람의 경력, 이력, 출생 도시, 출신 학교 같은 걸 중요하게 여겨요. ‘왕년에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라는 이야기가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 같아요. 이런 특성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지요?
▲집단적 형태의 사고와 오롯이 개인을 바라보는 사조와의 갈등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여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역동성이 큰 나라예요. 수많은 전란이 있었고, 무엇보다 식민 지배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에서 기존의 기득권이 많이 와해되고 새롭게 기회를 얻는 일이 빈발했다는 거죠.
더 많이 교육받고 그만큼의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수혜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좀 더 선망되는 학력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의 결과를 낼 것이라는 판타지까지 갖게 된 거죠. 미국은 학력과 무관하게 개인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도 포텐셜(potential)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빌리티(ability)를 파는 것이죠. 어떤 형태로 표현을 하든 능력이 있으면 충분히 고유의 역할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포텐셜 아닌 어빌리티 파는 시대데이터, 사람 이해하기 위한 관찰지
-작가님은 우리 사회에 대한 데이터를 집요할 정도로 모으고, 한 편으로는 프로파일링하고 있는 듯해요. 일종의 '범죄'와도 같은, 어떠한 큰 사건과 흐름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데이터를 통한 프로파일링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사회가 그리 건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출발은 불일치에 대한 해소였어요.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이 안 팔리는 이유가 뭘까? 소비자가 만족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연히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죠. 그때는 데이터가 수단으로 쓰였던 거예요. 이후 학력에 대한 무모할 만큼의 의존이라든지 아니면 우리 삶에서의 갈등, 신뢰의 부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사회 현상,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갈등 양상을 관찰하게 됐고요. 그런데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인류학에서 계속 사람들에 대한 관찰지를 남기는 것도 결국은 이해하고 싶은 거예요. 그들의 삶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때의 세시 풍속기를 남기면 후학들도 돌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감히 조심스럽게, '목표 없이 그냥 남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남긴다면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 것인지, 즉 대상이나 목표가 있을 겁니다. 그게 후손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나일 수도 있고, 인류의 문명을 이어받을 AI일 수도 있겠고요. 이런 관점에서 100년 후, 또는 200년 후에 지금 작가님이 수집하고 계시는 모든 데이터를 통해 미래 인류학 연구를 할 주체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기계일까요?
▲재미있는 생각이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희가 처음 이러한 작업을 했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은 곳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해온 작업의 형식은 정성적이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 정도의 어떤 업력이나 규모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를 바라보고 데이터를 누적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훨씬 더 길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이러한 방식을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라고 불러요.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로, 어떤 하나의 문화를 기준으로 묶일 수 있는 민족집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의미를 생생하게 해석하는 연구 방법이죠. 그다음 알게 된 건, 관찰은 이미 수많은 분이 하셨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그런 부분에서의 기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후배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남기려는 목적도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받는 철학적 질문이 있죠. 챗GPT는 언어 기호로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은 실제 세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스케일 법칙으로 대부분의 현상이 기호가 됐기 때문에 학습된 데이터는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챗GPT가 텍스트만이 아닌 현실을 이해한다는 의미인데,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일종의 절댓값에 대한 탐미인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사고의 체계라는 것이 언어로만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죠. 그만큼에 대한 인지는 아무리 만든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다만 내가 느끼고 인지하고 지각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로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교수님 같은 분들이 연구해주셔야 할 일이 아닐까 싶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지금 대두되는 있는 이슈 중에서 모사를 하는 작업의 경우 사람들에게 맡기려고 했더니 너무 부족했다는 거예요.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양이 부족한 현상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예전에는 식당에서 우는 아기들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각자 본인들의 자녀가 있으니까 다른 아이가 울어도 이해를 해주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어요.
'나'와 '남'의 분리와 반목 온전한 자립으로 불안 지워야
그런데 최근 들어 출생률이 사상 최저를 기록하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경험이 없거나 적어지다 보니, 또는 가질 계획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아이라는 존재의 관여가 없어지는 경우가 느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의 삶이 분리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들은 충격적인 얘기인데,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에 탄 엄마가 승객들에게 사탕을 나눠줬다고 해요. 아이가 울 수도 있으니 미리 미안한 마음을 표하려는 것이었어요. 이 모든 것이 다 같이 살아본 경험이 없어진 사람들이 반목하는 현상이거든요. 이건 좀 위험하죠. 공감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사람이 계속 쪼개어지면 불행해집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온전한 자립을 해야 해요.
-최근에 나오는 멀티 모달 생성형AI 아바타들을 보면 우리 개인을 정말 안심시켜주고 이해해 줄 것 같은 관계를 형성해요. 인류 역사상 개인의 걱정을 언제 어디에서나, 원하는 시간에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들어줬던 존재는 없었어요. AI에 대한 가짜 뉴스 등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가장 큰 걱정은 AI 시대에 인간은 다른 인간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성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닌가 해요.
▲심리학자들이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농부가 둘 있어요. 한 농부는 도끼를 빌려야 하고 다른 농부는 쟁기를 빌려야 한다면, 서로가 빌리고 빌려주게 되니 인내하고 신경을 쓰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돈을 가지면 이렇게 된대요. “도끼 빌릴 때 돈 주면 되지, 아니면 사면 되지”
이러면 상대의 부탁을 안 들어주게 되죠. 그러다 보면 서로 멀어지면서 결국 고립되고 나중에는 외로움에 이른다고 해요. 우리의 목표는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안온감을 찾고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얘기하죠. 결국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평생 은인 같은 관계인데 반대로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못되게 하는 것이죠.
-현재 독립적 자아를 찾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은 걱정을 하지 않아요. 적어도 30~40대, 20대까지도요. 하지만 지금의 10대는 AI 시대에 어떻게 인생을 꾸려나가야 할까 하는 걱정을 하게 돼요. 결과적으로 생성형 AI가 사회와 직업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10년 이상 걸릴 거예요. 바로 현재의 10대들이 직장을 얻을 시기가 되는 거죠. 이 친구들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AI와 경쟁을 해서 얻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이 AI 시대에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까요?
▲지금의 시대는 ‘선발’이 끝나가고 있다고 하죠. 과거의 시스템은 선택받는 것이었어요. 단 하루 만에 개인의 '당락'이 결정되고 여기에서 떨어지면 곧바로 다른 일을 하게끔 선택이 되었죠. 여전히 한국 사회는 대학 입시가 인생을 바꾼다고 믿고 있고요. 그런데 더 이상은 아닙니다. 데이터로만 봐도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이제는 유튜브를 하면 돼요. 다른 일을 해도 되죠. 매일 블로그를 하고, 그렇게 3년, 5년을 꾸준히 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반응이 있고, 일로 확장되면 그것 또한 작은 성공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 방식으로, 정해진 캐릭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인생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덕분에 개인의 인생이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것이라 볼 수 있고요. 우리의 고객이자 독자가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 줄 때까지 발전시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점은 예전에 비해 너그러움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현재는 기술도 민주화가 되었고, 개인의 표현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단점은 계속 나아져야 한다는 점이에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져야 한다는 것.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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