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쉬라즈'에 대한 사랑으로 맞잡은 두 손

구은모 2024. 9. 2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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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호주 '투 핸즈(Two Hands)'
1999년 남호주서 두 친구 의기투합으로 설립
호주 대표품종 '쉬라즈'의 산지별 다양성 구현 목표
지속가능성 토대로 다양한 친환경 농법 활용
편집자주
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투 핸즈의 '홀리 그레일 빈야드(Holy Grail Vineyard)' 전경.

"모든 것은 주방 테이블에 놓인 호주산 쉬라즈 한 병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그들에게 줄 수 있을까?"

1999년 9월, 친구의 약혼 파티에 참석한 두 친구는 쉬라즈 와인 한 병을 앞에 두고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호주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믿고 마실 수 있는 대중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세계 와인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형 와이너리를 중심으로 이러한 대중적인 와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호주 와인은 획일적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두 친구는 호주 와인에 대한 세상의 박한 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호주를 대표하는 '쉬라즈(Shiraz)' 역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포도 품종이라고 확신했다. 이들은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되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맛과 풍미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호주의 다양한 세부 산지 특유의 개성을 잘 구현한 최고 품질의 와인 생산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건축업을 하다가 와인 수출업을 시작한 마이클 트웰프트리(Michael Twelftree)와 오크통 제조회사를 운영하던 리처드 민츠(Richard Mintz), 두 친구는 '타협 없는 품질(Quality without compromise)'을 핵심 가치로 쉬라즈의 다채로운 매력을 세계무대에 선보이기 위해 두 손을 맞잡았다. 호주 바로사 밸리 '투 핸즈(Two Hands)'의 시작이었다.

투 핸즈의 포도밭이 위치해 있는 남호주 6개 지역.

'타협 없는 품질' 기치로 호주 대표 생산자로 '우뚝'

시작은 미약했다. 투 핸즈는 2000년 제대로 된 와이너리도 포도밭도 없이 3만달러를 투자해 구입한 포도 17t으로 첫 번째 빈티지 와인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 와이너리였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조금씩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점차 생산량을 늘렸고, 2003년 현재까지도 투 핸즈의 시그니처 시리즈 역할을 하고 있는 '가든(Garden)'과 '픽처(Picture)' 시리즈 와인을 출시했다.

두 시리즈가 시장과 평단 양쪽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으며 투 핸즈는 그해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의 100대 와인으로 처음 등장했고, 남호주의 주목할 만한 생산자로 급부상했다. 이후 투 핸즈는 맥라렌 베일(McLaren Vale)과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의 포도밭을 차례로 매입하고, 최신 설비를 갖춘 와이너리까지 설립하며 고품질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착실히 마련했다. 현재는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호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자 중 하나로 꼽힌다.

투 핸즈의 '가든(Garden) 시리즈' 와인.

투 핸즈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Hands-on)'는 장인정신을 생산철학으로 삼아 지은 이름이다. 그만큼 초창기부터 규모가 커진 지금까지도 모든 포도를 수작업으로 수확하는 것은 물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고, 포도 재배에서 와인 양조까지 포도밭 구획 별로 관리하는 등 세부 산지별 떼루아(Terroir·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총체)의 특성이 뚜렷한 와인 생산을 목표로 모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덥고 건조해 가뭄이 포도 재배의 중대한 문제가 되는 호주 기후에 대응해 2019년부터 적용하고 있는 '샙 플로우 테크놀로지(Sap Flow Technology)'가 대표적이다. 샙 플로우 테크놀로지는 포도나무에 바늘을 주입해 수분감을 확인하는 기술로 포도나무의 증산작용을 측정하고 모니터링해 포도나무가 최적의 시기에 적절한 양의 물을 받도록 지원한다. 투 핸즈는 이를 통해 수분 공급 시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물 사용량을 50% 이상 줄였고, 포도의 품질도 크게 향상시켰다. 이 밖에도 선크림처럼 직사광선으로부터 포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고령토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등 투 핸즈는 다양한 친환경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자신들이 양조한 와인을 세밀하게 등급화해 선별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목표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투 핸즈는 수확이 끝난 후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총 2000여 개에 달하는 모든 배럴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해 A+부터 D까지 총 8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최소 B등급 이상을 받은 와인만 출시하고, B-등급 와인부터는 투핸즈라는 이름을 떼고 외부에 판매한다.

투 핸즈의 대표 품종 '쉬라즈(Shiraz)'

다채로운 호주 쉬라즈에 대한 해답

현재 투 핸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州)를 중심으로 6개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산지가 되는 지역이 바로 바로사 밸리다. 바로사 밸리는 호주 와인의 절반가량을 생산하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도 최대 산지로 꼽히는 곳으로, 주도(州都)인 애들레이드 북쪽으로 60km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사 밸리는 지중해성 기후로 저지대는 온난하지만 고지대는 비교적 서늘하며,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일조 시간이 풍부해 기온은 높고 건조하며 포도의 생육 기간 강우량이 적어 완숙도 높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투 핸즈의 바로사 밸리 포도밭의 주인공은 단연 쉬라즈다. 쉬라즈는 프랑스 론 지역이 원산지인 '시라(Syrah)'와 같은 품종으로 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으로 가져갔고, 이곳을 거쳐 호주까지 건너가는 과정에서 프랑스어 구어체가 변형되며 이름이 바뀐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배 환경이 바뀌며 이름뿐 아니라 스타일에도 변화가 가해져 바로사 밸리의 쉬라즈는 선명한 베리류와 라벤더, 향신료 등의 풍미가 특징으로 프랑스의 시라 와인에 비해 묵직하고 농후한 스타일이다. 투 핸즈도 전체 포도밭의 90%가량을 쉬라즈가 차지하고 있다.

투 핸즈의 '픽처(Picture)' 시리즈 와인.

투 핸즈는 현재 플래그십과 싱글 빈야드, 가든, 픽처까지 총 네 가지 시리즈의 와인 포트폴리오로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가든과 픽처 시리즈다. 가든 시리즈는 바로사 밸리를 비롯해 맥라렌 베일, 클레어 밸리(Clare Valley), 에덴 밸리(Eden Valley), 애들레이드 힐스(Adelaide Hills), 히스코트(Heathcote) 등 6가지 대조적인 지역 토양에서 자란 쉬라즈의 복합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시리즈다. 픽처 시리즈는 사진작가 돈 브리스(Don Brice)의 폴라로이드 이미지를 라벨에 활용해 접근성을 높인 와인으로 쉬라즈 외에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리슬링(Riesling), 그르나슈(Grenache) 등으로 만들어진다.

이 중 설립자인 트웰프트리의 아내 이름을 딴 '사만다스 가든(Samantha’s Garden)'은 클레어 밸리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팔각과 사프란 등 복합적이면서 독특한 캐릭터가 느껴지고, 적절한 산미와 볼드한 타닌이 매력적이다. 와인은 프리런 주스와 껍질을 압착한 주스를 섞어 배럴에 담고, 젖산발효를 거친 뒤 18개월간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한 뒤 출시된다. 와이너리 측은 1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앞선 시리즈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격은 높지만 투 핸즈 와이너리의 정점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와인은 단연 플래그십 시리즈다. 이 중 진정한 아이콘 와인으로 꼽히는 게 '투 핸즈 마이 핸즈(Two Hands My Hands)'다. 마이 핸즈는 그 해 양조한 쉬라즈 중 최고로 꼽히는 것만 따로 골라 만든 와인으로, 작황이 좋은 해에만 극소량 생산한다. 바로사 쉬라즈 특유의 검붉은 진한 색을 띠고 있으며, 카시스, 블랙베리 등 과일 아로마와 함께 감초, 민트 등의 다채로운 향이 어우러진다. 입 안에선 섬세하게 다듬어진 타닌의 촘촘한 맛과 풍부하고 긴 여운을 즐길 수 있는 마이 핸즈는 25년 이상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와인이다.

투 핸즈의 아이콘 와인 '마이 핸즈(My Hands)'.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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