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게와 프리즈 서울의 세 번째 아트 프로젝트 ‘딥 타임’ [더하이엔드]

윤경희 2024. 9.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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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가 지난 4~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4’에서 다시 한번 아트 프로젝트로 찾아왔다. 브레게는 2022년 시작한 제1회 프리즈 서울부터 올해까지 매년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다. 2022년엔 유명 아티스트 파블로 브론스타인과 협업해 ‘산업혁명 기간 워치 메이킹 기술에 깃든 인내의 순간’이라는 설치 작품을 공개했다. 지난해엔 한국인 큐레이터 심소미와 작가 안성석·정희민을 내세워 국내는 물론 해외 아트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다.

지난 9월 4~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4 프리즈 서울에서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가 아트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브레게 공간엔 많은 사람이 찾아 시간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과 브레게의 시계들을 감상했다. [사진 브레게]

지난 4일 오전 11시 프리즈 서울의 개막과 함께 브레게의 공간에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브레게 공간은 아트 프로젝트 공간, 시계를 보여주는 공간, 관람객이 편하게 앉아 브레게 시계를 찬찬히 경험할 수 있는 라운지 공간으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은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는 영상 작품과 벽에 걸린 사진 작품을 감상했고, 반대편에선 스위스에서 날라온 브레게 시계 장인이 직접 보여주는 시계 제작 공정에 빠져들었다.

큐레이터 젠 엘리스가 프리즈 서울 현장을 찾아 직접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브레게]
브레게 장인의 시계 제작 시연 모습.[사진 브레게]
브레게 x 프리즈 서울 2024에서 함께 선보인 현장에서 함께 선보인 브레게의 뮤지엄 피스 No.4720.[사진 브레게]

젠 엘리스 주도한 ‘시간’의 예술


브레게는 2024 프리즈 서울을 위해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 큐레이터 젠 엘리스(Jenn Ellis)와 협업했다. 젠 엘리스는 예술과 공간, 그리고 환경의 조화에 열정을 품은 큐레이터다. ‘큐레이터 스튜디오 압사라(APSARA)’를 세운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의 예술가, 갤러리 등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해 왔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포도밭, 영국 메릴본에 위치한 ‘2등급(Grade II)’ 교회 등에서 열린 그의 프로젝트는 세계 아트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브레게 x 프리즈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 총괄한 큐레이터 젠 엘리스. [사진 브레게]


젠 엘리스는 지난해 브레게 x 프리즈의 아트 콜레보레이션을 주도한 심소미 큐레이터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2024~2025년 전시 큐레이팅과 기획을 총괄했다. ‘시간’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 그가 처음 한 일은 브레게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스위스 발레 드 주 지역에 위치한 매뉴팩처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브레게는 이곳에서 메종의 놀라운 유산과 시계 제작 노하우를 보여줬고, 이를 본 젠 엘리스는 “브레게의 창작물 하나하나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장인의 감성과 섬세한 손길, 뛰어난 기술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라며 “오랜 시간 이어온 유산에 대한 존중, 역사적 표현과 혁신 사이의 균형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시계 구조서 영감...지구의 궤적에 집중


이번 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주제는 ‘딥 타임(DEEP TIME)’. 지난해 심 큐레이터가 보여준 ‘스트리밍 타임(Streaming Time)’에 이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젠 엘리스는 이를 프랑스 파리 출신의 사진작가 겸 설치 예술가인 노에미 구달의 작품으로 풀어냈다. 구달은 이미 지난 5~8월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현대사진’ 전시를 통해 국내에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그는 고지질학과 고생태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다. 성곡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산’ 시리즈에선 만년설이 뒤덮인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카드 보드지를 설치 후 촬영하여 마치 산을 칼로 잘라놓은 것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다. 산 시리즈 3점은 이번 프리즈 서울의 브레게 공간에 함께 전시됐다.

노에미 구달은 이번 브레게 x 프리즈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태국의 자연을 촬영한 사진을 대형 패널로 만든 뒤, 이를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땅이 생겨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이것이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한 영상 작품 ‘포스트 아틀란티카’다. 인간, 지질학, 지구의 궤적,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결과다. 구달은 이 작품을 통해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 인류 유산과 기후에 대한 고찰을 강조하며 관람객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포스트 아틀란티카는 이후 퐁피두 센터에서 열릴 그의 개인전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 “인류와 지구의 유산, 깊이 고찰했다”

「 브레게x프리즈 아트 프로젝트 기획자
큐레이터 젠 엘리스 인터뷰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가 올해 프리즈 아트페어를 위해 선택한 사람은 다양한 시각으로 예술을 표현해내는 독립 큐레이터 젠 엘리즈다. 스위스와 콜롬비아에 뿌리를 둔 그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의 예술가·갤러리·협회 등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왔다. 그는 서울을 포함해 뉴욕, 런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4번의 프리즈에서 브레게 아트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프리즈 서울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말 서면 인터뷰했다.

그가 이번 아트 프로젝트에서 주목한 것은 시간,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진화적 변화였다. ‘변화가 일어나면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주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진화적 변화(evolutionary change), 그리고 그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진화라는 말은 지질학, 생태학, 유산, 혁신, 정체성뿐만 아니라 감성과 과학적 시각을 통해 시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열어 주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열린 프리즈 뉴욕을 시작으로, 서울, 런던,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는 올해의 프리즈엔 페어별로 시간을 주제로 한 네 가지 챕터의 프로젝트가 전개된다. 각 페어를 주도하는 협업 작가 역시 다르다.
프리즈 뉴욕에선 얼음을 통해 시간을 탐구하는 싱가포르의 대표적 아티스트 던 응(Dawn Ng)을 초대했다. 그는 숫자뿐 아니라 모양, 색상, 형태를 통해 어떻게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자신 작업의 진화적 측면을 탐구하는 네 개의 시리즈 작품 '우리들의 아틀라스(An Atlas of Us)'를 선보였다.

이번 프리즈 서울의 브레게 공간에선 기술과 미래, 지리적 변화, 그리고 그것이 지구와 인류 집단에 미치는 영향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젠 엘리스의 예술 세계가 펼쳐졌다. 협업 작가로는 프랑스 아티스트 노에미 구달이 선정됐고, 공간엔 그의 시리즈 작품과 신작이 공개됐다. 최근 성곡미술관에서 그룹전의 일환으로 전시됐던 작품 3점과 이번 브레게 x 프리즈 아트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한 그의 신작 '포스트 아틀란티카(Post Atlantica)'다. 포스트 아틀란티카는 오는 10월 파리 퐁피두 박물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예술과 장소, 맥락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챕터마다 국적과 활동 기반이 다른 한 명의 아티스트를 초대해 다른 장소 및 맥락과 대화를 나누며 교류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세계의 각 프리즈 아트페어와 브레게의 매 순간을 떠올리며 특정 아티스트와 그 장소 사이의 지리적, 시간적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

노에미 구달을 선택한 데엔 많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그가 지구의 궤적을 이해하기 위해 '딥 타임(Deep time)'이라는 관점에서 기후와 지질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구달의 작품이 정말 매력적인 이유는 자신의 탐구를 미적 매력과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 그의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해야만 작품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의 작업의 복잡한 연극성과 구조 때문이다. 고기후학의 맥락에서 그는 보다 과학적인 시각을 통해 진화의 변화를 탐구하기에 완벽한 예술가였다.”

브레게와의 협업 프로젝트인 만큼 예술 작품과 시계와의 연관성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시계와 예술 작품의 개념, 제작, 가치 공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특히 공유 가치의 관점에서 브레게란 브랜드의 유산과 예술 간의 유사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귀중하게 여겼다.
“브레게가 약 250년 가까이 만들어온 것의 핵심은 시간을 ‘맵핑’하는 것으로 봤다. 시간에 대해 혁신적인 동시에 미학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술가도 작업에 있어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런 매혹을 공감과 비판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시간 들여 천천히 보아야만 진가를 알아챌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Viewing)은 그냥 보는 것(Seeing)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현대 기술이 담긴 기기를 통해 보는 것이 많아진 시대에 우리는 종종 눈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번에 선보인 영상 작품 '포스트 아틀란티카'의 경우, 전체 영상을 보고 듣는 것을 관람객에게 추천했다. 작품으로의 여정을 떠나라. 이렇게 시간을 들여 보고 듣는 과정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브레게의 시계와 워치 메이킹을 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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