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고 돈 말리고…일·양육 다 힘겹다 [1+1=0.6명②]
“정부 저출생 대책있지만 여전히 워킹맘 희생 강요”
합계출산율 0.6명대를 목전에 뒀다. 장기간 이어진 초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국가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저출생 해법을 찾는데 온 사회가 골몰하고 있지만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저출생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편집자주- |
“오늘도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왔습니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한다. 아픈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이들 부부는 오늘도 맞벌이 전선에서 허덕이고 있다. 풍요로움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사는 것’이 이들에게 가장 큰 난제다.
육아전쟁, 노후준비, 내집마련 등은 오늘도 부부를 괴롭힌다. 첫째 아이를 낳고 재취업을 하면서 20% 이상 연봉이 삭감됐다는 이씨는 “양육하면서 모든 순간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며 “물가는 오르고, 좋은 부모에 대한 기준치도 옛날보다 높은 편”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부모들의 한숨은 유독 깊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 비해 육아휴직 등 지원을 제대로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38곳 가운데 육아휴직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52.5%에 불과했다.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황모(42)씨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은 유연 근무제나 육아 휴직 등 지원이 비교적 중소기업보다 잘 돼 있다”며 “사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억울하다. 모든 회사에 동일한 육아 지원이 제공되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중소기업 근로자는 더 열악하다. 9살, 6살 두딸을 키우고 있는 김모(41)씨는 “모은다기보단 버틴다”고 말했다. 김씨는 “외벌이로 살긴 너무 힘들어서 맞벌이를 한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은 연봉 자체가 대기업과 아주 다르다”며 “맞벌이는 청약할 때 불리하다. 그렇다고 외벌이로 청약을 기대하기는 분양가가 감당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주택 청약의 경우 맞벌이는 미혼이나 외벌이 부부보다 부부 합산 시 불리한 소득에 처하기도 한다. 청약 가점 만점자가 늘어나는 등 당첨의 구멍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에 비해 자녀 청약 가점도 미미한 수준이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설문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 기혼 응답자 876명 중 37.6%(복수응답)는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이 28.2%로 뒤를 이었다. 육아스트레스(18.4%), 난임 등 건강상 이유(9.1%) 순이었다.
저출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돌봄이다.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중소기업 맞벌이 부부의 큰 고민이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여전히 임신, 출산, 육아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씨는 “회사에서 연차가 제공되지 않는다. 대기업처럼 대체인력이 없으니, 이해는 하지만, 안타깝고 서러운 부분”이라며 “초반에는 사정을 설명하고 쉬었지만, 지금은 억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시선도 워킹맘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든다. 사회적 성취를 달성하면서, 육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황씨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에서 개인의 육아 상황을 일일이 고려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며 “아직 사회는 엄마가 커리어를 어느정도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가족을 위해 일을 포기하는 과거 여성의 전통적 사이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황씨는 “현재 엄마들은 대학도 나오고 교육을 많이 받았다. 어느 조직에 소속돼 일하던 사람들이다. 집에서 육아만 하라고 하면 아이를 낳겠냐”며 “아이는 독립적인 존재다. 성인이 되면 떠날 것이다. 아이가 컸을 때 내 직업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위기감과 절박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수십년간 수백조를 쏟아부었다. 여전히 육아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존하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황씨는 “결국엔 엄마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이를 낳으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데, 둘째까지 어떻게 낳냐”고 꼬집었다. 황씨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제 딸은 나중에 성인이 돼서 일을 할 때 이런 고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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