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전기차 질주, 오직 보조금 덕분?…관세만 때리는 서구 착각 [차이나테크의 역습]
7만대에서 120만대로.
2020년 7만대이던 중국의 전기차 수출량은 3년 만에 17배 늘었다. ‘저가 공세’로 출발한 중국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포함)는 이제 세계 시장의 주류를 노리고 있다. 멕시코와 태국에선 이미 중국 브랜드가 시장점유율 10% 선을 넘본다.
중국 전기차 경쟁력의 원천은 정부 보조금이다. 2009년부터 친환경 신에너지차 육성 정책을 펼친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통해 연구개발(R&D) 지원은 물론 원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했다. 독일 킬(Kiel) 경제연구소의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BYD는 2018~2022년 간 중국 정부로부터 34억 유로(5조원)의 직접 보조금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중국 비야디(BYD)의 중형 세단 씰의 가격은 2만6572달러(3524만원)로, 경쟁 모델인 테슬라 모델3(3만2466달러, 약4306만원)나 폭스바겐 ID.4(3만6104달러,약4788만원)보다 한참 싸다. 중국 BYD의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은 150만7000대로 세계 1위. 2위 테슬라 판매량(83만1000대)의 두 배 수준으로 많이 팔았다. 세계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사 중 4곳이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다.
중국 전기차의 공습에 유럽은 일단 관세로 대응 중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중국 정부의 불공정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최대 47.6%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업체들이 ‘특정 가격 아래로는 팔지 않겠다’는 최저가 확약을 제출했지만 EU는 이 제안도 거부했다. 다급해진 중국이 왕원타오 상무부장을 19일(현지시간) 브뤼셀 EU 집행위원회로 보내 EU 설득에 나선 배경이다.
중국은 보조금 외에도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 원료를 중국 내에서 조달하고, BYD 같은 전기차 회사가 배터리도 직접 생산하며 원가 경쟁력을 더 높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광물인 흑연은 현재 중국에서 100% 가공되고 코발트의 74%, 리튬도 65%가 중국에서 가공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밸류체인을 자국 내에서 완성한 중국 전기차를 한국 전기차가 가격으로 압도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BYD는 70만명(2023년 기준)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력으로, 글로벌 평균의 7배에 달하는 월 140시간씩 초과근무를 시키며 공장을 돌렸다. 전보희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인력자원, 설비투자, 품질보장과 자동화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도출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2023년 매출 6023억 위안(112조5000억원)을 올린 BYD의 순이익은 300억 위안(5조6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80% 증가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배터리 품질부터 자율주행을 위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에 왕성하게 투자한다. 지난해 BYD의 R&D 금액은 전년보다 112% 증가한 396억 위안(6조9000억원)으로, 같은해 현대차·기아 R&D 투자액(6조6000억원)을 넘어섰다. 중국 정부도 지난 6월 BYD·니오 등 9개 업체에 자율주행 시범 운행을 승인하며 미래 차 산업 선점을 위한 길을 깔아줬다. 가성비 전기차로 승부하는 전략 이후를 이미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워낙 앞서 있다보니, 중국 업체들과 합작하는 자동차 회사들도 늘고 있다. 일본 토요타는 자사의 전기차 bZ4X를 중국 디이·광치자동차와의 합작사에서 생산해 미국·영국 등에 판매하고 있고, 다국적 회사 스텔란티스도 중국 립모터와 합작사를 설립해 중국 외 판매에 대한 각종 권리를 보유한 상태다. 이호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장은 “글로벌 업체들이 중국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는 건 '중국 밖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조금 정책 그 이후 대비해야”
중국 전기차의 약진을 가장 강력하게 경계하는 건 미국이다. 미 하원은 이번달 초 중국과 연관된 부품이 포함된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중국 전기차의 미국 장악 종결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미국 전기차 소비자가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 중 60%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된 차량이어야 하는데, 이번에 ‘중국 관련 부품 0%’로 그 요건을 강화했다. 박철완 교수는 “미국이 자국 내 생산을 유치하려는 것인데, 중국 업체는 그동안 쌓아온 경쟁력으로 이런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찾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도 전장 부품과 정보기술 서비스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자동차 소프트웨어·전자제품 시장 규모는 연 평균 5.5% 성장해 2030년 4620억 달러(6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현대차그룹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는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는 미래를 내다본 긍정적 전략”이라면서도 “각국이 중국 전기차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을 유도하는 만큼, 국내 미래차 산업 생태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최선욱·고석현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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