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문인 있었다… 발품 팔아 쓴 한국문학 지리지
강진호 지음
민음사, 520쪽, 2만2000원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문학을 논리로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늘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문학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허전함을 채우는 수단은 답사여행이었다. 그렇게 20여 년을 전국 곳곳 문인들의 생가와 성장했던 곳을 뚜벅뚜벅 찾아다녔다. 매달 한 명씩 정해서 답사에 나서기도 했고, 때로는 두세 번씩 다시 찾으면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책은 기본적으론 여행기이면서 때로는 작품론, 작가론으로 읽힐 수도 있다. 크게는 우리 근현대 문학사를 일별할 좋은 기회다.
경춘선을 타고 가다 보면 익숙한 대성리 강촌을 거쳐 남춘천역에 이르기 전 스쳐 지나가는 역이 바로 ‘김유정역’이다. 2004년 ‘신남역’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역에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동백꽃’ ‘봄봄’의 작가 김유정의 생가와 기념관으로 구성된 ‘김유정 문학촌’이 나온다. 실레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그의 대표작 12편의 무대다. 저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소설의 지명과 실제 지명이 일치하는 까닭에 실레 마을의 요소요소는 소설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주며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세트장처럼 잘 구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답사를 통해서만이 김유정 소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김유정 문학의 특징으로 꼽히는 해학미의 연원도 추적한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사하고, 아버지마저 2년 후 사망하자 김유정은 누나들과 유모의 돌봄 속에 자랐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결핍은 판소리 동편제의 명창 박녹주를 향한 광기 어린 집착으로 이어진다. 휘문고보 시절 김유정은 목욕탕에서 나온 박녹주를 집까지 쫓아가고 그날부터 매일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혈서까지 써 보냈다고 한다. 2년 넘은 구애 속에 다니던 연희전문에서도 제적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김유정에게 실연의 상처는 오히려 문학 혼을 불태우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김유정이 박녹주를 만나기 전 판소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 김유정이 부르는 ‘강원도 아리랑’이 천하일품이었다는 기록 등을 제시하며 그의 해학미가 판소리에서 연유했을 것으로 추론한다.
책에는 김유정의 고향 실레 마을을 비롯해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 강원도 봉평,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 등 23곳의 ‘문학 지리지’가 빼곡하게 실려 있다. 때로는 “식민 치하의 곤궁한 현실을 외면한 채 성을 관능과 탐미의 대상으로만 다룬다”(이효석)는 냉정한 평가도 나오고, “시와 행동이 아름다운 일체를 이룬다”(이육사)는 상찬(賞讚)도 등장한다. 친일 행적 논란 때문에 ‘가장 눈부신 모국의 빛살로 시의 산맥을 이룬 한국 최대의 시인’이라는 평가에도 늘 ‘역사의식 없이 권력에 안주한 시인’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니는 서정주에 대해서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시인”이라는 아쉬움 가득한 비판을 가한다.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물려받아 직접 기성복을 고쳐 입거나 재봉틀로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었다는 윤동주, 어머니가 용꿈을 꾸었다는 동네 여인에게 논 몇 마지기 지불하고 꿈을 사서 임신했다는 이효석의 일화도 흥미진진하다. 폐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닭 30마리만 고아 먹고 싶다”는 김유정이나 “마이신 20~30병이라도 맞았더라면”이라고 말하는 채만식 등의 일화에서는 가난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의 애잔함을 숨길 수 없다. 강원도 철원 이태준의 생가터 표지판이 누군가에 의해 뽑혀 없어진 일이나 충북 괴산의 벽초 홍명희 생가 간판이 보훈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철거된 일 등에서는 월북 작가들에게 가해진 분단과 이념의 상처를 짚어본다.
대한민국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유명 문인들의 생가나 문학관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웬만한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제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분명 여행의 목적을 잠시 미뤄두고 시간을 내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문학이란 무릇 사람이 낳는 것, 작품을 논리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을 낳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 또한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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