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안정복 (4)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은 아내를 만난 것”

박지훈 2024. 9.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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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에 다니던 시절 광주에서 자취를 했는데 내가 살던 곳 옆방에도 자취생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중 한 동갑내기 여성이 내게 가지나물을 주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런 집에서 자란 여성이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내게 시집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총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시민군이었던 그 친구는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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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다니던 시절, 옆방에 살던
한 동갑내기 여성이 만들어 준
가지나물을 인연으로 연애 시작
집안 차이로 반대 있었지만 극복
안정복 EM미디어 대표가 1977년 12월 4일 광주의 한 예식장에서 찍은 결혼 사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에 다니던 시절 광주에서 자취를 했는데 내가 살던 곳 옆방에도 자취생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중 한 동갑내기 여성이 내게 가지나물을 주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자연스럽게 반찬을 준 그 여성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우리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여성이 바로 지금의 내 아내다.

또래 친구들보다 결혼을 빨리 한 편이었다. 생활이 안정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할 때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예비 며느리가 전남 장성의 잘나가는 집안 막내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집에서 자란 여성이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내게 시집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나는 어머니를 설득했고 결국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백년가약을 맺은 날짜는 1977년 12월 4일. 돌이켜 보면 아내를 만난 것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내는 꼼꼼한 사람이고 집안의 맏며느리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자식 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잘하는 아내를 둔 탓에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가도 만족하지 못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내겐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최고의 밥상이다. 아내를 생각하면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우리 부부는 광주 광산구 지산동에 있던 내 가게의 단칸방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 아들이 태어났고 그즈음 광주의 중심인 금남로로 가게를 옮겼다. 장사는 하루가 다르게 번창했다. 직원도 2명이나 뒀다. 서울 도매상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해 되팔고 TV 라디오 전축 등을 수리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금남로에 매장이 자리를 잡아갈 때쯤 잊지 못할 사건이 터졌다.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큰 얼룩을 남긴 그 사건의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그때 금남로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총이나 수류탄을 들고 다니던 앳된 얼굴의 청년들, 헬리콥터에서 울려 퍼지던 계엄군의 목소리, 사람이 가득했던 버스 안에서 터진 최루탄….

정말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등졌다. 신산했던 그 시절, 세상을 떠난 사람 중엔 내 친구도 있었다. 총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시민군이었던 그 친구는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계엄군에게 잡혀 머리에 곤봉을 맞고 한 달 뒤 뇌출혈로 숨을 거뒀다. 내가 더 강하게 만류했다면 그 친구는 죽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렇게 폭풍 같던 1980년의 봄이 지나갔다. 나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경으로 오직 일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만약 지금 청춘의 터널을 통과하는 이들이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도전하라는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꿈을 꾸라는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우직하게 그 길을 걸어가면 언젠가는 누구든 꿈을 이루게 된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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