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뇌전증 증상 90대 21곳, 온열질환 60대 13곳 응급실 떠돌아
고령층·고위험군 많아 환자 불안
강원·전남·경남은 상황 더 열악
추석 연휴 기간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수용 가능한 응급실이 없어 환자 이송이 지연된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60대 남성이 응급실 13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했다. 뇌전증 발작 증상을 보인 90대 여성은 응급실 20곳을 떠돌다 서울로 이송됐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비수도권에서 의료진과 병상 부족 상황이 계속되면서 빈약한 지역 의료 실태가 표면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8일 오후 9시20분쯤 강원 소방 당국에 “어머니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관들은 춘천시 효자동으로 출동했다. 소방은 A씨가 90대 고령 여성인 점에 비춰 생명이 위독하다고 판단해 출동과 동시에 응급실에 이송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 자택과 1.5㎞ 거리에 있는 강원대병원 응급실은 “남는 침대가 없다”는 이유로 A씨를 받지 못했다. 이후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인성병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원도 내 홍천아산병원, 양구성심병원, 원주의료원뿐 아니라 경기 남양주백병원 등 총 20개 병원 응급실 이송이 불발됐다. A씨는 쓰러진 지 3시간가량 지난 19일 밤 12시쯤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됐다.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에는 60대 남성 B씨가 응급실 13곳으로부터 수용을 거절당했다. 효자동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B씨는 당시 체온이 41도에 달해 온열환자로 분류됐다. 이례적인 가을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소방은 당시 신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강원대병원에 이송 요청을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중환자가 많아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소방은 홍천아산병원, 원주의료원 등 강원도 내 응급실 10여곳으로부터 같은 답을 들었다. B씨는 오후 4시40분쯤 경기 남양주 중앙대학교의료원 교육협력 현대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일선 소방대원들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응급실이 의료공백에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소방 관계자는 19일 “지방은 특히 고령층과 고위험군이 많아 응급실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힘들게 환자를 이송해도 인력과 장비 등이 부족해 치료가 지연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고령층은 합병증 등 다른 지병으로 악화될 수 있어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방의 응급실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한데 특히 강원, 전남, 경남은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씨의 경우 갑작스럽게 뇌 등에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며 “CT 설비가 있는 곳에서 초동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일부 대처가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의료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경증 환자들의 응급실 방문이 지난해 대비 40% 가까이 줄어든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이 경증일 때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준 덕분에 응급의료 현장이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연휴 기간 하루 평균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는 지난해 추석(2만6003명) 대비 39% 감소한 1만578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설날(2만3647명)과 비교해도 33% 감소한 규모다. 경증 환자 분산을 위해 연휴 기간에 문을 연 당직 동네 병·의원은 하루 평균 8743개소로, 당초 예상(7931개소)보다 10.2% 늘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우려했던 대란, 붕괴, 마비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연휴 동안의 응급실 이용 변화는 기존 응급의료체계가 개선되는 계기로도 이해된다”며 “질환 중증도에 따른 올바른 이용으로 응급실 과밀화가 줄고 더 긴급한 환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추석 비상 응급 대응 주간에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정한 거점 지역응급의료센터 14곳을 연휴 이후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또 연휴 직전 병원에 파견한 군의관 250명도 부대 복귀 없이 의료 현장에서 계속 활동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윤예솔 이정헌 이경원 기자 pinetree2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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