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정권의 핵심 리스크가 된 영부인

김정하 2024. 9. 2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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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논설위원


민심을 몰라도 어떻게 이렇게 모르나. 추석 연휴였던 지난 15일 김건희 여사가 장애아동 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온 탄식이다. 명절 때 영부인이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거야 정치권의 오랜 관례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이벤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다. 연휴 직전인 12일 김 여사와 관련된 두 개의 뉴스가 터져 나왔다.

첫째 서울고법이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사건 2심에서 ‘전주(錢主)’ 손모 씨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오래전부터 손 씨 혐의가 김 여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손 씨 판결이 김 여사 기소 여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번 2심 판결로 검찰은 김 여사도 기소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게 됐다.

「 홍보 사진보다 대국민 사과가 먼저
“대통령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
그 약속 지켰으면 불상사 없었을 것

김건희 여사가 9월 15일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 은평구의 발달장애 아동 32명이 생활하는 '다움장애아동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장애아동과 포옹하는 김 여사 모습. [사진=홈페이지]


둘째 감사원이 대통령실ㆍ관저 이전 공사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계약ㆍ시공ㆍ준공의 전 과정에 여러 불법ㆍ비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여사 관련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인테리어 공사에 참여해 논란을 일으킨 대목에 대해 감사원은 수의계약이 불법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쉽게 수긍하긴 힘들다. 2021년 영업이익이 1억5000만원에 불과한 영세 업체가 종합건설업 면허도 없는데 수십억 원짜리 국가 핵심보안시설 공사를 따낸 게 누구의 입김이었을지 뻔하다. 수사 당국이 이 문제를 이 잡듯이 뒤지면 뭐가 더 나올지 모른다. 야당은 ‘검건희 특검’으로 관저 이전 의혹까지 규명하자고 벼른다.

이렇게 민심을 자극할 악재가 연타로 터졌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스레 봉사활동을 하는 영부인이라니. 국민에게 봉사의 진심이 전달되기보단 보여주기식 쇼만 한다는 반발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을까. 게다가 김 여사는 이미 지난 10일 ‘마포대교 시찰’로 논란을 일으킨 상태였다. 자살예방 활동이었다곤 하나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세워두고 김 여사가 손으로 지시하는 듯한 사진이 공개되자 당장 시중에선 “누가 대통령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인사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 여사는 지난 6일 검찰 수사심의위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자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재개하려는 심산일까. 정말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김건희 여사가 2021년 12월 26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이력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명품백 문제는 법적 절차야 어찌 되든 본인의 진솔한 공개 사과가 없으면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없는 이슈다. 김 여사는 대선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허위 이력 논란을 직접 진화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윤석열 캠프가 여러 악재로 크게 흔들리자 김 여사가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명품백 문제와 비교하면 오히려 이력 부풀리기는 경미한 사안이었다.

김 여사는 올 초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가량 빠졌다”며 명품백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를 댔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그 무렵 윤 후보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윤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과 지지부진한 선거 캠페인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끝까지 김 여사가 사과 회견을 하지 않았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 여사는 당시 회견 때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면 오늘날 영부인이 정권의 핵심 리스크가 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정히 사과가 힘들다면 철저히 은거하는 게 차선책이다. 아주 불가피한 필수 행사를 제외하곤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현 상태에선 자꾸 홍보 사진을 찍어봐야 국민의 부아만 돋우니까 말이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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