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지역 규제에 발 묶인 국민의 노후자금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분명히 우리나라 공공기관인데 서울에는 사무소가 없고 뉴욕·런던·싱가포르·샌프란시스코에는 있는 게 있다. 그게 뭘까. 규모가 작거나 중요성이 없어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은 전혀 아니다. 이 기관에서 굴리는 돈은 이미 1100조원이 넘는다. 앞으로 16년 뒤에는 170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힌트는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모아서 운용하는 공공기관이란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경제·금융이나 사회복지에 대한 상식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정답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다. 본부는 전북 전주에 있고 해외 네 곳에 현지 사무소를 뒀지만, 서울에는 별도 사무소가 없다. 일반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연금공단 지사와는 혼동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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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해외 진출은 활발한데
서울사무소 설치는 감감무소식
‘투자의 현지화’로 수익률 높여야
」
기금운용본부의 수익률 성적표는 전 국민의 노후자금에 영향을 준다. 국민연금 기금의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47조원이다. 기금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오르거나 내려도 11조원 넘는 돈이 왔다 갔다 한다. 만일 수익률을 꾸준히 높게 유지한다면 연금 고갈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반면에 수익률이 저조하다면 연금 고갈 시기도 빨라진다. 가만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본다고 좋은 수익률이 나올 리는 없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최신 정보를 최대한 빨리 수집하고 투자 전략에 정교하게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해외 사무소를 설립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태 서울사무소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스마트워크센터(원격근무용 공동 사무실)를 마련하긴 했다. 하지만 출장자 등을 위한 임시 공간인 데다 좌석도 30석밖에 안 된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한참 부족하다.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상반기에 102조원을 벌었다. 수익률은 9.71%였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투자 자산은 해외 주식이었다. 상반기에만 20.4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해외 주가가 상승한 요인도 있었지만,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 효과도 컸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원화로 계산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 환율이 내리면 환차손이 발생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달러당 1390원대까지 상승했다가 최근에는 달러당 1320원대로 하락했다. 올해 하반기 국민연금 종합 성적표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환율은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마음 같아선 최대한 고수익을 내면 좋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변동성이 심한 자산에 투자할수록 고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투자 위험도 커진다. 고수익과 고위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위험이 싫어서 저위험을 선택한다면 저수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의 배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말은 쉽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이들이 금융시장과 활발하게 교류(네트워킹)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적으로 한계가 뚜렷하다. 원래 서울에 있던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전주로 이전했다. 이때를 전후로 다수의 인력이 사직서를 냈다. 서울의 금융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왜 지방으로 가야 하느냐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성공적인 자산 운용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주최한 전문가 공청회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전문가 보고서에선 “대체투자 부문의 운용인력 유출이 규모나 내용 면에서 심각한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 “본사(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 차원이 아니라 투자의 현지화라는 관점”이라며 “해외 사무소 확대의 필요성과 같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4일 보건복지부의 연금개혁안 발표에서 서울사무소 관련 내용은 빠졌다. 기금 수익률이 중요하다면서도 지역 정치권의 이해관계까지는 극복하지 못한 모습이다. 다른 공공기관은 몰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큰손’들과 경쟁하는 기금운용본부까지 꼭 지방으로 옮겼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지역 균형발전도 좋지만,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본사 이전도 아니고 서울사무소 설치조차 못하게 막는다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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