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상향 비교 성향 강해… 부의 척도가 행복 척도라 왜곡”

신준섭 2024. 9. 2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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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지난 10일 광주과학기술원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희삼 광주과기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행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인 김 교수는 한국에 사는 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과 비교하는, 지나치게 강한 ‘상향 비교 성향’을 꼽았다. 광주과학기술원 제공


‘돈을 더 벌면, 건강하면 행복할까’라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뤄 행복하다는 사람을 찾는 일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어렵다.

지난 10일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만난 김희삼 광주과기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인식 혼선의 원인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요약했다. 한국 사회는 ‘상향 비교 성향’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물질만 좇다 행복의 필수 요소를 놓친다는 평가다. 그는 행복을 연구하는 정통 경제학자다. 김 교수는 “돈은 불행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행복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목표가 왜곡되다 보니 행복할 수 없다. 누구나 서울 강남 3구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의 행복도는 높지 않다. 김 교수는 교육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과도한 사교육 열풍을 투자 대비 행복 효용이 떨어지는 ‘(주식) 리딩방’에 비유했다. 김 교수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불이익을 받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1인 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를 넘었다. 그런데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2024 세계행복보고서’ 속 한국 행복 순위는 143개국 중 52위다.

“세계행복보고서에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인 중 1인당 GDP와 건강 기대 수명은 한국이 높다. 특히 건강 기대 수명은 세계 3위다. 그런데 다른 4개 지표는 낮다. ‘삶의 선택 자유’는 80~90위다. 내가 필요할 때 도와줄 사람(또는 제도)이 있는지 묻는 ‘사회적 지원’이나 기부와 같은 ‘공동체 나눔’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이 낮은 게 문제다.”

-행복 순위 1~3위 국가를 보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가 많다. 뭐가 차이인가.

“이 나라들의 특징은 굉장히 건강한 개인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라고 하는 자료에서 보면 해당 국가들은 탈물질화된 가치관이 강하다. 반면 한국은 집단주의를 벗어나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고도 여전히 물질 중심이다. 여기에 극심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세하면서 ‘각자도생’ 사회가 됐다. 북유럽과 달리 아주 박약한 사회자본을 가진 거다.”

-물질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맞다. 돈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가라고 했을 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고소득층은 소득 차이에 따른 행복도 편차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저소득층은 같은 조건에서 행복도의 편차가 크다. 1만원의 소득 상승이 미치는 행복 효과가 전혀 다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돈은 극단적인 불행에서 우리를 구하는 방파제 역할로 상당히 효과가 있다. 다만 행복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급하자는 정치권 논의는 어떻게 생각하나.

“재정을 쓰는 목적이 국민 총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을 때 저소득층한테 더 많이 주는 게 낫다.”

-월 소득 700만원을 넘는 고소득 가구의 76.4%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보고 더 많은 부를 갈망한다. 행복에 대한 인식을 물질에서 바꾸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계층을 ‘심리적인 비(非)상층’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가 개인 자산의 상대적인 부족이다. 강남 3구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상층이라 생각을 못 한다는 거다. 이는 우리처럼 고속성장한 국가에서 나타나는 ‘상향 비교 성향’이 원인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강박’이기도 하다. 2014년 연구결과를 보면 이 비교 성향은 행복에 마이너스다. 비교 성향이 강하면 물질적 성과가 높지만 대신 희생하는 것들이 크다. 정신적으로 불면·강박도 있고 도박이나 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해 본 결과 5점 척도 기준으로 비교 성향이 1 높을 때 행복 감소 효과는 연 소득 2000만원 감소 효과와 같았다.”

-행복하지 않은데 왜 저 목표를 지향하나.

“허영에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강남에 집을 사니 2, 3배가 되는 구조다. 정부가 그곳에 여러 좋은 인프라로 공공투자를 계속한 탓도 있다.”

-한국은 사교육부터 시작해 강남 3구를 목표로 삼는다.

“사교육은 ‘주식 리딩방’처럼 굉장히 큰 비용이 든다. 애들도 힘들고 부모도 노후 대비를 못 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강박과 불안이 아이를 사교육으로 이끈다. 하지만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이점은 학원 등에서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흥미로운 게 부모들이 유치원은 국공립을 원하는데 초등학교는 사립을 원한다. 그만큼 교육의 질이 좋아서다. 그렇다면 남아도는 교육 예산으로 공립을 사립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어떨까 싶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지 불이익을 받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정부가 투자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동안 관행처럼 비효율적으로 해오던 부분을 과감하게 줄여서라도 말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SNS에 나오는 물질적인 과시를 너무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질적인 것보다 좋은 친구 한 명 사귀는 게 나을 수 있다. 또 남들 하는 걸 좇아가기 보다는 내 인생은 내가 쓴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미리 경험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얘기를 듣는 것도 필요하다.”

광주=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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