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낯선 공간이 만드는 새로운 형식

2024. 9. 2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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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누군가의 고됨을 전제한 명절
35년 반복된 형식을 깼을 때
가족다움이 새롭게 피어난다

가족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명절 풍경에는 ‘전통’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일정한 형식이 있다. 바쁜 일상에서 온 가족이 모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식을 공유하는 반복성은 자칫 형식이 지키고자 했던 의미를 상실한 채 가족 간 갈등을 초래한다. 굳어진 형식 아래 특정인들의 고정된 역할 부담이 전제되는 것이다. 성별과 장유유서의 질서가 깊이 새겨져 있는 가족제도에서는 주로 어머니나 며느리 같은 ‘여성’이나 ‘큰아들’이나 ‘큰며느리’, ‘큰딸’과 같은 ‘맏이’의 명절 부담이 크게 가중된다.

우리 시댁에서도 ‘여성’이자 ‘맏이’인 큰형님의 역할이 가장 컸다. 나도 사형제 막내아들과 결혼하며 얻은 ‘며느리’라는 이름에 당혹스러운 상황에 가끔 직면했지만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맏며느리’ 큰형님의 어려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특히 ‘명절’은 형님에게 일상의 역할 몇 배를 가중하는 ‘특별 노동 기간’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하는 장보기와 음식 준비뿐만 아니라 비용 분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하는 것도, 자기 주방을 다른 가족에게 모두 개방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렇게 형님은 자기가 선택한 남편이 ‘큰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난 35년, 70회가 넘는 명절마다 반복된 형식에 자신을 끼워 맞췄다. 가족 형태가 이전과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가족 모임’을 여전히 정례화하는 한 모든 가족이 그 부담을 정확히 n분의 1로 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큰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 추석에는 여행지 펜션에서 1박2일 함께 머물며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계산해 보니 가족당 분담해 내던 명절 음식값이면 숙박비와 저녁 바비큐 비용에 얼추 맞출 수 있었다. 다행히 가족 단톡방에서도 큰 이견 없이 의견이 모아졌다.

숲에 싸인 펜션은 모두에게 ‘낯선’ 공간이었지만, 낯섦이 만들어 내는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미리 주문한 바비큐 재료가 숯을 다룰 수 있는 네 남자들 손에 넘어가자 큰형님을 비롯한 네 며느리들은 ‘명절 음식’이라는 중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이전에도 남자들이 주방 일을 ‘거들기’는 했지만 낯선 공간에서야 비로소 주방 일의 주객과 식탁에 앉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낯선 공간이 부담을 덜어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명절 전날이면 미리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밤에는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잘 수 있었던 옛 방식보다 시간의 부담이 훨씬 컸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은 부담마저 보람으로 바꿨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밤새 형제들 간에 옛 추억과 현재의 고민이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으며, 팬션의 커다란 소파 위에서는 내 외동딸이 사촌 언니들과 몸을 맞대고 앉아 촉감의 추억을 쌓았다. 90세가 가까워지는 나이에 식욕이 크게 줄었던 어머니도 낯선 식탁에 앉아 오랜만에 배부르게 식사를 하셨다. 무엇보다도 나는 일정상 추석 전전날 시작된 여행 덕분에, 20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당일날 남편 가족이 아니라 내 부모와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됐다.

현대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인간은 전통의 영향을 받지만 전통이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를 왜곡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공동체 구성원들 간 합리적 의사소통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의 전통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누군가의 과잉 부담에 기반한 구조로 유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제안처럼 ‘합리적 의사소통’이 늘 가족 간에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진득하게, 켜켜이 쌓여 있는 해묵은 감정들이 합리적 의사소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던가. 이럴 때 공간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꼭 펜션이 아니어도 좋다. 모이는 집을 바꿔본다면? 과감하게 일정을 바꿔본다면? 가족의 가족다움이 늘 새롭게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형식이 만드는 의미보다 의미가 만드는 형식이 더 중요하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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