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도망쳐

강창욱 2024. 9. 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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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예정된 도쿄로의 연수를 앞두고 일본 현지 뉴스를 서울에서 틈틈이 기사로 전하고 있다.

국내에 아직 혹은 미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나 사정 가운데 한국 관련이나 시사점이 있는 일, 또는 국적 불문 누구라도 관심 가질 법한 일을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나 사회현상은 한국과의 유사성이나 연관성 때문에 '남의 일만은 아닌' 경우가 많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린 문제가 지방자치단체장의 갑질과 비리 정황을 폭로한 효고현 내부고발 사태인데 이 역시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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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온라인뉴스부 차장


내년 봄 예정된 도쿄로의 연수를 앞두고 일본 현지 뉴스를 서울에서 틈틈이 기사로 전하고 있다. 국내에 아직 혹은 미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나 사정 가운데 한국 관련이나 시사점이 있는 일, 또는 국적 불문 누구라도 관심 가질 법한 일을 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나 사회현상은 한국과의 유사성이나 연관성 때문에 ‘남의 일만은 아닌’ 경우가 많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린 문제가 지방자치단체장의 갑질과 비리 정황을 폭로한 효고현 내부고발 사태인데 이 역시 낯설지 않다.

사이토 모토히코 효고현 지사는 직원 사이에서 ‘폭군’으로 불리는 상사다. 관용차에서 내려 건물 현관까지 20m를 걷게 했다고 직원들을 호되게 질책한 장면이 자주 거론되지만 이는 대표 사례일 뿐이다. 그는 평소에도 집무실을 떠날 때 엘리베이터가 대기하고 있지 않으면 화를 낼 정도로 권위적인 인물이다. 이런 그가 무서워서 직원들은 지사가 올 때까지 엘리베이터를 열어두는 사람까지 배치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겁을 주듯 책상을 자주 두드렸고 펜을 책상 위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한밤중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이 스마트폰 메시지로 지시를 내렸다.

사이토 지사에게 공식적으로 제기된 혐의는 일곱 가지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일부에 불과하다. 시찰 대상 기업으로부터의 물품 수수, 현청 간부들을 동원한 불법 사전선거운동,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행사 티켓 대량구매 유도, 특정 기관 보조금 증액 후 정치자금으로 돌려받기 등도 중대한 혐의다. 이런 의혹을 언론 등에 알린 60대 국장급 간부는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고 지난 7월 자살을 선택했다. 당시 사이토 지사는 “업무 시간에 사실무근의 문서를 만들어 흘리는 행위는 공무원으로서 실격”이라며 징계를 정당화했다.

사이토 지사는 올해 3월 첫 폭로 이후 반년 동안 모든 의혹을 ‘거짓말’이라며 부인해 왔다. 구체적 증언이 잇따른 직장 내 괴롭힘 혐의에 대해서는 “업무상 필요한 지도”였다는 주장으로 버텼다. 지난 9일에는 소속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자진사퇴를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써 거부했다. 사퇴 여론이 더욱 고조된 11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처했는데 이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죄가 아니라 “분하다”였다. 다음 날 현의회는 만장일치로 사이토 지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사이토 지사는 ‘사이코패스형 상사’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직원 위에 군림하면서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잘못마저 인정하지 않고 공은 모두 가로채는 ‘일말의 인정도 없는’ 인간이라고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인사·경영컨설턴팅 전문가가 설명했다. 그들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반박하려 들면 몇 배로 돌려받아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지기 때문에 상대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전문가는 조언했다.

문제는 도망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도망치지 못한다면 남은 선택지는 순응(혹은 복종)하거나 몸부림치는 것뿐이다. 중간관리자가 문제라면 내부고발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최고위층이 상대라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맞서다 벌어진 일이 효고현 사례다. 숨진 직원은 스마트폰에 “죽음으로 항의한다”는 문구를 남겼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는 게 “도망치라”는 전문가의 부연이다. 그는 “사이코패스 유형으로 빠르게 성공한 사람은 몰락도 순식간”이라며 “아무리 일을 잘해도 신망이 없기 때문에 권력을 잃으면 모두가 등을 돌린다”고 설명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견디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강창욱 온라인뉴스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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