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 대통령, 작전타임이 필요한 때

손병호 2024. 9. 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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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논설위원

스포츠에서 경기 잘 안 풀릴 때
‘타임’ 불러 전세 전환 시도하듯
현 국정 돌아보는 시간 가져야

여야 원로나 쓴소리 한 사람도
만나 생생한 민심 청취하고
획기적 쇄신으로 국면 전환하길

스포츠에서 작전타임은 경기가 안 풀릴 때 특히 긴요하다. 나와 상대의 경기 양상을 점검해 부진한 점을 보강하거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새 자세로 경기에 임하게 해준다. 파리올림픽 때 양궁이나 탁구에서 우리 선수들이 연달아 점수를 잃을 때 일부러 작전타임을 불러 한숨 돌리게 한 뒤 새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가게 해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을 많이 봤다. 잘만 쓰면 전세 전환은 물론, 승리의 발판도 될 수 있는 게 작전타임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한테 필요한 게 이런 작전타임이다. 윤 대통령은 두 달 뒤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게 된다. 그런데 현 정부가 처한 형국은 아주 암울하다. 윤 대통령의 주요 개혁 과제들은 대부분 걸음마 단계로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4·10 총선 참패 뒤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들은 뭘 쇄신했는지 잘 모른다. 국민이 바란 쇄신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서 벗어나 야당과의 협치로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인적 쇄신으로 국정 분위기를 전환하며, 여당과의 수직적 당정 관계를 바로잡고, 김건희 여사 논란을 잠재우라는 것이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 야당과는 총선 뒤 영수회담을 계기로 협치가 펼쳐지나 기대했더니 오히려 지금은 관계가 더 악화됐다(물론 야당 탓도 크다). 또 유능하고 참신한 이들로 인적 쇄신을 할 줄 알았더니 그런 인사는 별로 안 보였고, 최근엔 뉴라이트 인사 논란까지 더해졌다. 한동훈 대표와 수시로 삐걱거리는 등 여당과의 관계도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총선 전에도 논란이던 김 여사 문제는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시간만 흘려버리다 최근 김 여사의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여당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의 현 주소는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로 주저앉았다. 갤럽 조사에선 긍정 지지율이 딱 20%인데 언제 10%대로 내려갈지 모를 일이다. 여권의 텃밭 격인 70대 이상과 보수층, 대구·경북에서도 윤 대통령한테 등을 돌리려는 낌새가 감지된다.

그런데도 정권 주변에선 “개혁엔 늘 저항이 따른다” “노무현정부 때도 인기 없는 정책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우리 대통령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상남자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당조차 위기라고 진단하는데 안일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성공적 국정 운영을 바란다면 지금은 ‘윤비어천가’를 부를 게 아니라 작전타임을 불러야 한다. 대통령이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국정 쇄신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게 그 일이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기존에 보던 사람들 말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같은 여야 원로나 정치학자, 여론조사 전문가, 경제·사회·외교 등 각 분야 책사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박지원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처럼 쓴소리를 해온 이들을 만나도 좋고, 야당 대표와의 회동도 피할 이유가 없다.

윤 대통령이 그런 소통과 민심을 청취하는 작전타임 기회를 통해 진짜 쇄신에 나서야 한다. 대야 관계, 인적 쇄신, 여당과의 관계 정립, 김 여사 문제 등에 있어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입법 권력을 틀어쥔 거대야당의 실체를 인정하고 협력적 관계를 이끌어내야 4대 개혁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실과 내각이 임기 반환점을 돌고서도 실적을 낼 수 있는지 재차 옥석을 가리고, 전면적 인적 쇄신이나 야권 인사 기용과 같은 극약처방이라도 해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한동훈 대표 위상을 존중하는 등 여당과도 빨리 한마음이 돼야 한다. 김 여사 문제로도 더는 진을 빼지 않도록 진솔한 사과 등의 조치가 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어제 체코 방문길에 나섰다. 통상 대통령이 해외에 나갔다 들어오면 국면 전환을 시도하곤 한다. 밖에선 국내 상황을 보다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체코에서 돌아오면 국정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입법 권력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통해 쇄신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임기 후반기는 국정 동력이 떨어지기 쉬워 사실 일할 시간도 많지 않다. 지금 쇄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 모른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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