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혐오의 씨앗’이 싹튼다
“정말 걱정이다. 중국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18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벌어진 일본인 초등생 흉기 피습 사건에 대한 한 일본인 남성의 반응이다. 10살짜리 피해 학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하루 만에 숨졌다. 등굣길을 함께 하던 부모도 참극을 막지 못했다.
중국에서 4년째 거주 중인 그는 “나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외국인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중국 정부의 말을 믿을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수화기 건너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제 막 4살이 된 그의 아이는 자택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다닌다.
붙잡힌 피의자는 44세 중국인 남성이다. 범행 동기는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사건을 추가 조사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건 날짜를 두고 묘한 해석이 나온다. 93년 전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이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은 이날을 국치일로 지정하고 주요 도시에서 추도식을 열어왔다. 반일감정이 이번 범행의 기폭제가 됐을 거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내 일본인을 향한 공격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6월엔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중국인 남성이 일본인 모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하교 중인 일본인 학교 스쿨버스가 습격당했다. 이 남성을 막으려던 중국인 여성 안내원이 결국 숨졌다. 일본인 모자도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8월엔 산둥성 칭다오시 일본인 학교에 돌이 날아들었다.
비단 일본뿐 아니다. 곳곳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이어졌다. 지난 6월 지린성에서 미국인 대학 강사 4명이 흉기에 찔려 쓰러졌고, 지난 3월엔 쓰촨성에서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네덜란드 기자들이 폭행당했다. 그럴 때마다 중국 당국은 ‘우발적 범죄’라는 점만 강조했다.
이러한 외국인 대상 범죄의 근간엔 ‘중국식 애국주의’가 있다. 외국인을 배척하고 맞서야 할 ‘적’으로 보는 인식이다. 외국 기업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결국 강력 사건까지 벌어졌다. 관영 매체들은 그제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에 촘촘히 뿌려진 ‘혐오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다.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지 불 보듯 뻔하다. 이를 방조해왔다는 눈초리를 받는 중국 당국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모든 외국인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말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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