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체제가 약자를 지켜주지 못할 때

2024. 9. 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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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항상 어른들은 (학교가) 저희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그런 공간에서 성폭력을 당한 거잖아요”(JTBC 뉴스룸). 며칠 전 ‘교내 불법 촬영’ 뉴스를 보다가 피해 중학생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적어도 학교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구나. 우린 너무나 무심코 넘기고 있었구나.

영화 ‘소년시절의 너’ 역시 학교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을 다루고 있다. 중국 어느 대도시의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피해자가 건물 밖으로 뛰어내린다. 같은 반이었던 첸니엔은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 바쁜 이들 틈에서 나와 친구의 시신에 겉옷을 덮어준다. 그가 가해자들의 새로운 타깃이 된 것은 그때부터다.

어디에도 첸니엔을 지켜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란 의미에서,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고, 경찰서에는 경찰이 없고, 가정에는 가족이 없다. 몸으로, 악다구니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거리에서 만난 샤오 베이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한다. 그런데 샤오 베이 또한 법의 보호에서 배제돼 있는 청소년이다.

영화는 체제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약자는 어떻게든 올가미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지만 한낱 장난감으로 조롱당하며 삶과 죽음의 담장 위를 걸어가야 한다. 가해자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배워야 할 학교에서 ‘그래도 된다’는 걸 배운다. 학교는 그들의 “놀이터(playground)”다.

첸니엔은 울고, 또 운다. 울음을 삼키며 처연하게 눈물 흘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처량하게 울고, 몸과 마음을 던져 처절하게 운다. 눈물은 왜 힘이 되지 못하는 걸까. 비단 학교만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한’ 군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입사한’ 회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부끄러운 일 아닌가. 최소한 ‘첸니엔’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어른이 한두 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사는 사회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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