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유럽판 나스닥 출범할 수 있나
독일 벤처기업 바이오엔테크(BioNTech)는 코로나19 때 독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년도 채 안 돼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만들었다.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 우구르 자힌은 성공한 터키 출신 이민자다. 그는 독일 사회의 개방성과 독일 생명과학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바이오엔테크는 2019년 미국의 정보기술벤처 기업들이 모여있는 미국 나스닥에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곳에 상장해야 기업가치도 더 높게 평가받고 기업의 자금조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스트리밍기업 스포티파이도 2018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다.
이처럼 유럽의 유망한 기업들은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를 선택했다. 2018년 후 약 50개의 유럽 기업들이 미 증시에 상장됐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2015~2023년 기간에 유럽이 이런 미국 선호 때문에 약 4390억 달러의 시가 손실을 보았다고 추정했다. 맥킨지는 이 기업들의 미국 상장 때 시가와 상장 후 증가한 시가 차이로 손실액을 계산했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잘나가는 회사들이 미국에 상장하지 못하게 잡지 못할까? 유럽 자본시장 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작고 회원국별로 분절화됐기 때문이다. 미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먼에 따르면 미국은 연금과 보험, 가계 자산 등이 자본시장에 활발하게 투자돼 국내총생산(GDP)의 약 5.25배 규모의 자본시장을 갖췄다. 반면에 유럽연합(EU) 27개국은 국가별 편차가 있지만, 자본시장의 크기가 GDP의 130~200% 정도다. EU에는 35개 증권거래소와 18개의 청산기관이 있는데, 미국은 각각 3개와 1개에 불과하다. 그만큼 EU 각국에 자그마한 여러 증시가 분산돼 있어 유럽 차원의 증시로 규모의 경제를 키울 수가 없다. 전 세계 주식시장 시가에서 미국은 43%, 유럽은 11%에 그친다.
때마침 이달 초 유럽의 전자거래소인 유로넥스트(Euronext),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FWB), 벤처 기업협회 등이 포함된 서명자들은 EU 차원의 자본시장동맹 완성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EU 회원국 재무장관과 집행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열려있고 통합된 자본시장은 단일시장을 촉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U 증시 통합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유럽판 나스닥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 때문에 구태여 미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당위성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회원국별 칸막이 시장이라는 오랜 관습과 제도다. 이를 제거해야 유럽판 나스닥이 출범할 수 있을 것이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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