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이 음모론에 더 잘 속는다”

이영희, 권혁재 2024. 9.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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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4일, 당시 28세 에드거 웰치라는 남성이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피자 가게 ‘코멧 핑퐁’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웰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이끄는 조직이 이 가게 지하실에서 아동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상을 구할 구세주라고 믿는 ‘큐어넌 음모론’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이 식당엔 아동학대범은 물론 지하실조차 없었다.

‘피자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현대 사회에 암암리에 퍼진 음모론이 어떻게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쓴 마이클 셔머(70·사진)는 30여년 간 이런 음모론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항해 온 학자다. 그는 1997년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 단체인 ‘스켑틱 소사이어티’를 창립하고, 회의주의 과학 저널 ‘스켑틱(Skeptic)’을 창간했다. 9~13일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13일 만났다.

Q : 한국에도 음모론이 많다는 걸 알고 있나.
A : “연구자로서 접한 한국의 음모론은 북한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어제 DMZ에 가서 제3 땅굴을 방문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이 땅굴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여러 설이 있었는데 결국 북한이 공격을 위해 팠다는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렇게 음모론이 진실로 드러나는 경우, 사람들은 관련된 음모론에 더 쉽게 빠지게 된다.”

Q : 최첨단 과학 시대인데도, 비이성적인 음모론은 더 많아진다.
A :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음모론이 생겨난다는 통계는 없지만 소셜미디어(SNS)의 발달로 음모론이 더 빠르게 퍼지는 건 확실하다. 1960년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은 뉴스레터나 책 등을 통해 몇 년에 걸쳐 알려졌다면, 지금은 블로그 글이나 영상 하나로 하루아침에 100만명이 넘는 사람에게 퍼질 수 있다.”

Q : ‘똑똑한 사람일수록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고 했는데.
A : “어떤 음모론이 사람들의 지성을 건드리고,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더 잘 믿게 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이해가 잘되지 않는 현실을 논리적으로 개념화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나 9·11 테러를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에도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이 많다.”

Q : 현대 사회에선 정치적 음모론, 가짜 뉴스의 폐해가 크다. 최근 TV토론에서 트럼프는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발언을 했다.
A : “정치인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 주장을 퍼트린다. 트럼프가 지난 10일 토론에서 ‘범죄율이 역사상 최악’이라고 했는데, 실제 미국의 범죄율은 코로나19 당시 조금 증가했다가 낮아지는 추세다. 현 정권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기 위해 이런 거짓 발언을 거듭하는 것은 큰 문제다.”
그는 음모론이 자리잡기 힘든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민감한 주제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다른 생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은 제발 무언가를 모를 땐 모른다고 말하라”고도 했다. 정치인들이 음모론을 퍼트리고 결국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고 사회는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글=이영희 기자·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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