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삐삐 공급한 헝가리 회사,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주인”

백일현, 한지혜 2024. 9.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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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무전기 폭발로 손상된 레바논 남부시돈의 휴대전화 가게 앞에 군인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레바논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 무선호출기(삐삐)’가 제작된 헝가리의 공장은 이스라엘의 유령 회사가 운영하던 곳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년 전부터 유럽에 유령 회사를 차려놓고 기회를 엿보다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폭발물과 기폭장치가 삽입된 폭탄 삐삐 수천 개를 헤즈볼라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NYT는 익명의 이스라엘 정보당국 관계자 3명을 인용해 “대만 기업 골드아폴로의 수주를 받아 계약을 체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BAC컨설팅은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운영하는 유령 회사”라며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운영하는 유령 회사가 이 공장 외에도 최소 두 곳이 더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BAC는 평상시엔 정상 제품을 제조했지만, 헤즈볼라가 주문한 제품은 ‘폭탄 삐삐’로 만들었다. 폭약을 넣거나 배터리 표면에 고폭발 물질인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를 바른 제품이었다. BAC는 폭탄 삐삐를 2022년 처음 레바논에 배송했다. 당시엔 소량에 머물렀지만, 올해 초 헤즈볼라가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삐삐 사용을 시작한 뒤 수천 대가 제작·배송됐다.

악시오스는 복수의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최근 헤즈볼라 대원이 폭탄 삐삐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관련 작전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결국 ‘당장 작전 착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미국 당국자는 “써먹지 않으면 잃게 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헤즈볼라가 조직 차원에서 휴대전화 대신 삐삐를 사용한 데엔 이스라엘 측의 선전이 역할을 했다는 추정도 나온다. NYT는 다양한 소문 등으로 휴대전화를 불신하는 분위기를 만든 주체가 이스라엘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18일 레바논 동부 발벡의 한 주택에서 폭발한 무전기 잔해. [AP=연합뉴스]

폭탄 삐삐의 배후와 관련해 이스라엘군 비밀 첩보기관 8200부대가 주목받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8200부대가 삐삐와 무전기 생산 단계에서 폭약 장착 시험에 개입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 내 우수한 인력 수천 명을 보유한 8200부대는 18∼21세의 젊은이 중 적응력과 학습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며, 미 국가안보국(NSA)과도 연계해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8200부대 전역자들은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 고위직에 오르거나 정보통신 분야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레바논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터져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친 데 이어 18일엔 무전기 수십 대가 연쇄 폭발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 이상이 다쳤다. 무전기뿐 아니라 태양광 장비도 갑자기 폭발해 헤즈볼라의 거점인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 등에선 최소 60채의 집과 상점, 수십 대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화재에 휩싸였다.

헤즈볼라는 18일 “레바논 국민을 학살한 적에 대한 가혹한 대응”을 천명했다. 헤즈볼라는 이날 삐삐 폭발 사건 후 첫 공격으로 이스라엘 포병 진지를 로켓으로 공격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이날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무게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전쟁의 주역이던 육군 98사단을 레바논과의 국경 인근인 이스라엘 북부로 이동 배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피란을 떠난 6만 명의) 북부 주민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다.

백일현·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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