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양극화가 음모론 부추긴다”...『음모론이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셔머

이영희 2024. 9. 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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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4일, 당시 28세 에드거 웰치라는 남성이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피자 가게 ‘코멧 핑퐁’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웰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이끄는 조직이 이 가게 지하실에서 아동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상을 구할 구세주라고 믿는 ‘큐어넌 음모론’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이 식당엔 아동학대범은 물론 지하실조차 없었다.

의 저자 마이클 셔머. .권혁재 전문기자" sr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409/19/8630cc5c-1c1a-4f83-afee-90c46877a5ee.jpg">
‘피자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현대 사회에 암암리에 퍼진 음모론이 어떻게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등의 책을 쓴 마이클 셔머(70)는 30여년 간 이런 음모론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항해 온 학자다. 대학에서 실험심리학과 과학사를 전공한 그는 1997년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 단체인 ‘스켑틱 소사이어티’를 창립하고, 회의주의 과학 저널 ‘스켑틱(Skeptic)’을 창간해 지금도 이 잡지의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잡지 ‘스켑틱’은 한국에서도 지난 2015년 첫 권이 나와 현재까지 총 39권이 발행됐다.

지난 9~13일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13일 만났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는 그는 “음모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북한과 마주한 한국은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늘 오고 싶었다”며 “한국 사회의 에너제틱하고 다이내믹한 분위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음모론에 맞서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도 음모론이 많다는 걸 알고 있나.
A : 연구자로서 접한 한국의 음모론은 북한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어제 DMZ에 가서 제3 땅굴을 방문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이 땅굴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여러 설이 있었는데 결국 북한이 공격을 위해 팠다는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렇게 음모론이 진실로 드러나는 경우, 사람들은 관련된 음모론에 더 쉽게 빠지게 된다.

Q : 최첨단 과학 시대인데도, 비이성적인 음모론은 더 많아진다.
A :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음모론이 생겨난다는 통계는 없지만 소셜미디어(SNS)의 발달로 음모론이 더 빠르게 퍼지는 건 확실하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은 뉴스 레터나 책 등을 통해 몇 년에 걸쳐 알려졌다면, 지금은 블로그 글이나 영상 하나로 하루아침에 100만명이 넘는 사람에게 퍼질 수 있다.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도 음모론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결국 모든 음모론은 ‘적’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서 음모론을 믿게 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대리 음모론’으로 마음 깊은 곳의 증오가 표면적 음모론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피자 게이트’의 경우, 그 깊은 내면에는 ‘(미국) 민주당이 싫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두 번째는 ‘부족 음모론’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음모론을 믿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합리적 음모론’은 음모론을 믿지 않았을 때 닥치는 위험(테러 등)보다 음모론을 믿고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마이클 셔머의 책 표지. 사진 바다출판사

Q : ‘똑똑한 사람일수록 음모론에 빠지기 쉽다’고 했는데
A : 어떤 음모론이 사람들의 지성을 건드리고,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더 잘 믿게 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이해가 잘되지 않는 현실을 논리적으로 개념화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에선 대졸자가 고졸자에 비해 약 20% 정도 음모론을 덜 믿는다는 결과가 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나 9·11 테러를 미국 정부가 일으켰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에도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이 많다.

Q : 현대 사회에선 지구평평론(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 UFO의 존재 등 과학적 주장보다는 정치적 음모론, 가짜 뉴스의 폐해가 크다. 최근 TV토론에서 트럼프는 “이민자들이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발언을 했다.
A : 정치인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 주장을 퍼트린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지난 10일 토론에서 “범죄율이 역사상 최악”이라고 했는데, 실제 미국의 범죄율은 코로나19 당시 조금 증가했다가 낮아지는 추세다. 현 정권을 깎아내리기 위해,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기 위해 이런 거짓 발언을 거듭하는 것은 큰 문제다. 언론사의 팩트 체킹 등을 통해 이런 종류의 음모론을 계속 검증해야 한다.

Q : ‘스켑틱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 1990년대 초반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널리 퍼져있었고, 또 백신이 자폐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음모론이 생겨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주장을 검열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진지하게 검증하고 설명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 음모론에 깊이 빠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A : 정치나 종교 등 신념과 관련한 문제라면 사람들은 쉽게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근거를 갖고 설명하면 설득할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그대로 믿지 않고 의심하게 만드는 것,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음모론이 자리잡기 힘든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민감한 주제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다른 생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은 제발 무언가를 모를 땐 모른다고 말하라”고도 했다. 정치인들이 음모론을 퍼트리고 결국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고 사회는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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