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 공고'도 모르는 요즘 애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김관식 기자]
▲ 문해력과 어휘력을 갖춘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전체적인 말과 글의 흐름을 읽고 메시지를 파악하는 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고, 이는 사회에서 협업을 통해 성과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 김관식 |
"추후 공업고등학교가 어디야?"
그러자 "(특정 일정에 대한) 추후 공고(나중에 다시 공지함)를 저렇게 받아들인 것 아님?"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혼자 피식 웃으며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본 터라 일단 스크랩해 두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부모 마음에 중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카톡으로 이 내용을 보냈다.
'요즘 1020세대 어휘력이 문제라더라'
아이는 여느 그 또래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가 보낸 카톡을 몇 시간이 지나도록 확인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저녁에 집에 와 아이에게 아빠가 보낸 카톡을 봤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제야 휴대전화를 확인하곤 무슨 내용인지 안단다. 이윽고 아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게, 왜 개개인이 잘 모르는 것 갖고 우리 세대 모두의 얘기처럼 말하는지 모르겠어. 잘 하는 애들도 많은데."
그동안 아이는 학교에서도 뉴스에서도 이와 관련한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그렇다. 문해력 얘기다. 즉, 글을 읽고 그 글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문장을 이루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문맥의 오류를 일으키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문해력, 특정 세대만의 문제 아냐
얼마 전 SNS에서 논란이 됐던 알바 이력서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력서 내 '휴대전화' 기입란에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자신의 아이폰 기종을 적은 사례도 일파만파로 퍼졌다. 또, 무협지에서 장수끼리 '무운(武運, 무인으로서 운)을 빈다'고 하는 말을 '운이 따르지 않기를 빈다'는 뜻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일선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한 기사에서 '사흘'을 실제 '4일'로 이해해 '4흘'이라 쓰는가 하면, 한 신문 기사에 한스러움을 나타내는 恨(한할 한) 대신, '韓'(한국 한, 나라 한)을 써서 ''LG의 우승 韓 풀어준 명장' 염경엽 감독'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가 돼 한바탕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지난해, 자신을 어린이집 교사로 소개한 A씨는 커뮤니티에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고 적었다. 그 글에는 "우천 시 OO로 장소를 변경한다"라는 공지문에 대해 한 학부모가 "우천시는 어디냐"고 되묻는 통에 곤혹스러웠다고 적었다.
지난해 방송된 tvN <유 키즈 온 더 블럭> 제204화 '문해력을 키워드립니다' 편에서 조병영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가정통신문 수학여행 관련 안내문에 '중식 제공'이라는 글을 보고 한 학부모는 '왜 한식이 아니고 중국 음식이냐'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며 "어휘는 언어의 재료다. 요리할 때도 다양한 재료가 있어야 하듯이 여러 말을 알고 있으면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고, 상황설명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해력의 문제는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세대, 전 세계에 걸쳐 직종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언어는 자기 성장의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글을 읽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와 나 자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문해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상황과 소통하는 방법이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즉, 영상으로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영상의 시대'를 맞은 이면의 모습인 셈이다.
조 교수는 방송에서 "긴 글 읽는 걸 어려워하고, 책 읽고 내용을 정리해 오는 것도 힘들어한다"며 "학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책 읽어라, 글 읽어라' 말하지만 앞서 가정통신문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어른도 예외 없는 긴 글 기피현상이 전 세대에 걸쳐 행해지는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현상은 특정 세대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글의 내용과 취지를 들여다보지 않고 몇몇 표현이나 단어에 꽂히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초등 혹은 중학 수준 학습 필요한 성인, 무려 735만 명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국가문해교육센터가 2023년 9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만 1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 성인 중 초등 또는 중학 수준의 학습을 필요로 하는 성인은 약 735만 명(16.6%)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272만 명은 별도의 문해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다만, 이 수치는 지난 '제3회 성인문해능력조사' 결과(2020년, 20.2%인 890만 명)에 비해 다소 낮아진 점이 고무적이다. 그러나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 비율이 연령이 높을 수록, 월가구 소득과 학력이 낮을수록, 농산어촌에 거주할 수록 높은 것으로 분석된 것을 볼 때, 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욕구 만큼, 정부의 관심과 정책이 이들 곳곳에 효과적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한 정책 고안 역시 시급해 보인다.
▲ '2023년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 성인 중 초등 또는 중학 수준의 학습을 필요로 하는 성인은 약 735만명(16.6%)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272만명은 별도의 문해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수준1은 초등 1~ 2학년, 수준2는 초등 3~6학년, 수준3은 중학생 수준, 수준4는 중학 학력 이상 수준을 나타낸다. |
ⓒ 국가평생교육흥원 |
▲ 예스24가 발표한 2023년 도서 판매 동향 분석표 |
ⓒ 예스24(2024) |
40대 외 모든 연령대는 비중이 소폭 증가했다. 증가 폭은 50대(2.1%p), 30대(1.2%p), 60대 이상(1%p), 10대 이하(0.8%p) 순으로 나타났다.
다행스럽게도,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관심과 노력은 모든 연령층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스24가 발표한 '7월 5주 베스트셀러 동향'을 보면, 어휘력과 문해력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어른들을 위한 필사 가이드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가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어린이 맞춤형 기사로 문해력과 어휘력을 키우는 학습도서 <초등 첫 문해력 신문>은 종합 12위에 올랐다.
평소 독서와 글쓰기 등으로 사고 습관 길러야
언론사의 기사 역시,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선에서 객관적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고 작성할 필요가 있다. 가령 "(중략) 기본적인 어휘를 오해하는 일이 잦아지며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식의 기사 리드문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신견식 소설가는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로는 한국에서 청소년과 20대 문해력이 가장 좋고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는 결과도 있다. 미디어에서 단편적 현상만 재미로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고등학생이 40대만큼 어휘력은 없더라도 문해력이 낮다는 것은 과장이다. 세대마다 익숙한 어휘도 다르다"고 썼다.
그의 말마따나 문해력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미디어나 SNS에서 재미나 '짤'로 돌아다니는 현상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세대가 그때그때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하듯, 틈틈이 독서와 글쓰기 등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내적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력을 키워야 한다.
이 글을 쓴, 나 역시도 스마트폰 그만 내려놓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seoulpal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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