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트럼프는 왜 뻔한 거짓말을 하는가
"내가 믿는 걸 말했을 뿐이다"
자기 말 진실·거짓인지 관심 없어
판단 능력 잃으면 거짓에 복종
나치 동조한 獨 국민이 사례
지난 9월10일 열린 미국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 방송은 흥미로웠다. 나로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거기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 되기를 아예 포기한 듯했다. 트럼프는 숱한 중범죄 혐의로 기소당했다. 성폭행, 탈세, 내란 선동 등 그 죄질도 나쁘다. 이런 자가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후보라는 건 그 자체로 미국이 망가져 있다는 한 증거다.
토론에서 트럼프는 아예 ‘어그로꾼’이 되기를 택했다. 공적 토론이 빤한 거짓말로 얼룩질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트럼프는 사실에 기반한 정책을 주장하는 대신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화끈한 거짓말쟁이로 행동했다. 떠들썩한 ‘악플’이 조용한 ‘무플’보다 낫다는 걸 잘 아는 방송꾼 같았다. “민주당 당원 일부가 출생 후 낙태를 지지한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먹고 있다”고 사실을 호도했다.
싸구려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카메라를 독점하며 우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ABC 방송 팩트체크 팀은 기민했다. 토론 진행자인 데이비드 무어와 린지 데이비스는 토론에 끼어들어 즉각 사실을 확인해 알렸다. “미국 어느 주도 아기가 태어난 후 죽이는 게 합법인 곳은 없다.” “이민자 커뮤니티 내 개인이 반려동물을 해친다는 믿을 만한 보고는 없었다.” 사실에 관심 없는 트럼프는 물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을 보여준 인상적 장면이었다.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구를 대통령으로 할지는 미국 유권자들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트럼프는 왜 끝없이 거짓말을 할까?’ ‘평범한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의 거짓말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거짓에 바탕을 둔 정치는 자칫 공동체의 존망을 가져올 수 있기에 예부터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거짓된 자를 가리는 게 언제나 쉬운 건 아니었다.
‘거짓말의 역사’(이숲)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말한다. “누군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거짓말쟁이는 언제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은 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난 속이지 않았다. 내가 진실로 믿는 걸 말했을 뿐이다.’ 과연 트럼프는 거짓이 드러날 때마다 비슷한 변명을 해댔다. 확신범, 그러니까 거짓을 말하더라도 자기 말을 스스로 믿는다면, 남을 속이려 한 게 아니라면, 틀린 걸 말했을 뿐 거짓말은 안 했다는 뜻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실과 거짓을 가릴 때 의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가 무얼 말하든, 속이려는 분명한 의도, 욕망, 의지가 없다면 거짓말도 없다.” 세상엔 확신하는 거짓말쟁이가 얼마든지 넘쳐난다. 가령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진화론이 하나의 견해라고 말할 때, 우린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잘해야 멍청이라고 조롱할 수 있을 뿐이다.
‘거짓말의 철학’(에이치비프레스)에서 노르웨이 철학자 라르스 스벤슨은 “거짓말의 반대 개념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진실성(truthfulness)”이라고 말한다. 역시 의도를 우선하는 것이다. 그는 진실성 없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 분별한다. 믿고 싶음(truthiness), 개소리(bullshit), 거짓말이다.
믿고 싶음이란 실제와 상관없이 직감에 기대어 어떤 게 사실일 것이라 믿는 태도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일본 국적이었다고 말할 때, 그는 믿고 싶은 걸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과는 달랐다. 일본은 국적법이 아니라 호적령으로 조선인을 관리했고, 해방될 때까지 선거권 등이 포함된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다. 친일파가 일본인 되고 싶다고 그토록 바랐는데도 말이다.
개소리의 본질은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다. 참이라는 믿음도, 거짓이라는 자각도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떠든다. 개소리하는 자의 말엔 임기응변과 꾸며댐이 가득하다. 그는 자기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제 한 이야기와 같은지 다른지 관심 없다. 그저 순간순간 청중에게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우리는 숱한 ‘사이버 래커’ 방송에서 이런 개소리를 만날 수 있다.
거짓말은 “남들이 내가 진실을 말할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에서 내가 내심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안의 진실성마저 내던지는 행위로, 다른 사람이 진실에 접근하는 걸 차단하고, 상대가 스스로 진실을 알아낼 자유도 빼앗는다. 거짓말쟁이는 대개 거만하고 무례하다. 상대의 판단력을 얕잡아 보고, 자신이 진실과 거짓을 좌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공적 리더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막는 건 시민과 언론의 공통 책무다.
문제는 공적 인간이 진실로 믿는 거짓을 내뱉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확신하는 거짓말쟁이’가 진짜 원하는 걸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짓말의 효과와 결과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런 거짓말이 통용되고, 시민 전체가 거기에 포획되었을 때 실제 우리 공동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렌트는 말한다.
“이 끝없는 거짓의 목적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없으면 옳고 그름도 구별할 수 없다.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을 빼앗긴 이들은 거짓의 지배에 완전히 복종한다. 이들을 상대로는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독재의 탄생이고 전체주의의 도래다. 우리는 나치의 거짓에 동조한 독일 국민에게서 그 실체를 볼 수 있다. 사실에 관한 확인, 진실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해진 세상, 모든 말이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세상에선 진실을 가리는 일도, 사회를 분열시키고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도 불가능하다.
정치가 자기 말의 신뢰를 늘리기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만 골몰할 때, 즉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휘젓는 것으로 만족할 때, 세상은 점점 믿지 못할 곳으로 변한다. 이런 세상에선 누구도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일찍이 몽테뉴는 말했다. “말이 우리를 속인다면 모든 교류와 소통이 부서지고, 우리가 세운 정치체의 유대가 풀린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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