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밥의 위력, 추석에 응원을 주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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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기자]
제법 긴 추석 연휴였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 다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벽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도시락을 만들게 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이 추석연휴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 추석은 유례없는 폭염의 연속으로 에어컨과 한몸이 된 추석답지 않은 추석을 보내야만 했다. 또 무서우리만큼 고공행진 중인 물가 탓에, 추석 음식과 선물을 최소화한 추석이기도 했다.
더구나 올해는 내게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 추석이었다. 조금은 쓸쓸하고 당황스런 추석을 치루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연휴를 보냈다.
▲ 영화 '빅토리' 포스터. 응원과 감동이 있던 영화. |
ⓒ 임경화 |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기대하지 않고 보러갔다가, 소소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은 영화였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백화점 안의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달달한 팝콘으로 여유를 즐겼다.
20대 후반에 결혼하며 시작한 시집살이... 억울한 적도 많았다
둘째날은 아침 일찍 남편과 동네 산으로 연결된 둘레길을 걸었다. 무더위를 피해 이른 시간에 숲길을 걸으며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 우리 동네 둘레길의 시작점. 가을은 아직 오는 중인가 보다. |
ⓒ 임경화 |
황해도가 고향이신 시어머니는 전쟁통에 월남하신 실향민이셨다. 어머니의 추석은 약 2주전부터 시작했다. 신혼초 맞벌이라 퇴근해 오면 어머니께서는 명절 김치를 담그고 계셨다. 임박해서 장을 보면 비싸진다는 이유였다.
고기와 생선 과일도 미리 미리 사오시고 이북식으로 만두재료와 녹두 빈대떡할 녹두도 미리 담가놓고 냉장고를 채우셨다.
명절 전날은 분가하신 큰형님네와 작은형님네 가족들이 그리 크지않은 집으로 모였고 한나절 내내 녹두빈대떡을 만들고 송편을 빚었다. 그리고 그 많은 가족들이 저녁을 같이 먹고 하룻밤을 같이 잤다. 다음날 저녁까지 나는 어머니의 시중을 들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 하다보면 피곤과 함께 머리가 하얘지기 일쑤였다.
다음날, 가족들이 각자 이제는 친정에 간다고 집을 나선 후에도 나는 친정에 갈 수 없었다. 복잡하게 어지러진 집안을 치우고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다보면, 혼자 남을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다음 날에서야 친정에 다녀 오곤했다.
그 때는 나도 20대 후반 어린 나이였다. 그렇다보니,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이지만 그런 상황과 환경들이 서운하고 억울하게도 느껴졌었다.
홀 시어머니를 막내 며느리인 내게 모두 떠 맡기고 다들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마음의 병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집살이는 둘째를 낳고 기르는 결혼 8년차에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막을 내렸고, 동시에 '며느리 명절 증후군'도 사라지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안 계시니 형제 간에도 모이기가 어려웠고, 그저 각자 살아내기에 바빴다. 자녀들이 시집 장가를 가니 시집 식구들은 경조사를 통해서나 만나게 되고 명절은 예전같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도 형님네도 자영업을 하니 시간 맞춰 얼굴 한 번 보는 게 쉽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형님네, 당황스러웠지만 밥상을 차렸다
그런데 올 추석 아침. 모처럼 늦잠도 자고, 기분좋게 살짝 게으름을 피우던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에서 족발집을 하시는 둘째 형님께서 아주버님과 함께 우리집에 오신다는 전화였다.
'아니 왜? 하필 오늘 명절에?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며칠 전에 미리 선물도 건네고 왔는데...'
올 추석은 음식도 따로 안 만들었는데, 갑자기 온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근처 맛집들에 전화해 보니 추석 당일이라 대부분이 휴무였다. 투정이 나왔지만, 어쩌지 하면서도 할 수 없이 급하게 가게에 내려가 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쌀을 씻고 선물로 들어온 보리굴비를 굽고 시제품 동그랑땡을 계란물만 입혀서 한 접시 부쳤다. 그리고는 좀 부실한 상차림을 보는데 남편이 말했다.
"당신, 어머니한테 배웠던 황해도식 콩나물밥 하면 어때? (형님이) 어머니 음식이 그리워 오시는지도 몰라~"
명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가족들 좋아하는 이북식 음식을 준비하셨다. 몇 년 간 곁눈으로 배운 음식 중에 돼지 고기 목살과 콩나물을 듬뿍 넣은 황해도식 콩나물밥을 남편도 좋아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이북식 만두와 녹두빈대떡 등 어머니의 손맛을 내는 사람은 나밖에 없게 되었다.
▲ 콩나물밥(자료사진, 유튜브 화면 갈무리) |
ⓒ 유튜버 '아들새끼도시락' |
진간장에 마늘과 대파른 잘게 썰어 넣고 청양고추도 조금 넣은후 매실청과 참기름을 듬뿍 섞어 양녕장을 완성했다. 남편이 사온 콩나물은 살짝 데치고 압력 밥솥에 쌀과 고기를 섞어 담고 다시마물로 밥물을 맞췄다. 마침 된장국 얼려 놓은게 생각나서 꺼내어 녹인 뒤 급하게 상을 차렸다.
형님네도 자영업자인데 명절 연휴 중 추석 당일만 쉬신단다. 두 분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셨다. 형님네는 가볍게 나가서 식사할 요량으로 오셨다면서도, 눈 앞에 차려진 상을 보며 짐짓 놀라는 눈치셨다. 두 분은 앉아서 콩나물밥을 맛있게 드셨고, 덕분에 우리도 오랜만에 어머니표 음식을 맛보았다.
식사 뒤 차를 준비하는데 아주버님께서 가게를 잠시 나가시길래 화장실에 가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10여 분 뒤 돌아오신 아주버님께서 내게 건넨 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쌩뚱맞은 추석 선물이었다. 용돈이었다.
"제수씨! 오늘 저희가 갑자기 왔는데... 쉬시다가 밥상 차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제 동생과 애들 키우며 잘 살아주셔서, 그냥 고마워서 제가 오늘 용돈 드리고 싶었어요."
▲ 아주버님께서 주신 용돈 봉투 |
ⓒ 임경화 |
형님네 두 딸 자식들이 다 커서 출가를 하니(더구나 한 명은 외국에 나가 산다), 내외만 덩그러니 남은 명절 아침이 조금은 외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편하게 나가서 식사를 하리라 예상했다가 차려진 어머니 음식에 살짝 감동했을지도, 연로하신 당신의 어머님과 기꺼이(?) 함께 살아준 내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명절 끝자락인 지금, 며칠전 보았던 영화 '빅토리' 속 자막이 떠오른다.
'스포츠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에서 90%가 응원을 받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는 자막 말이다.
아주버님께서는 당신의 막내동생 부부를 응원하고픈 마음으로 오셨던은 아닐까? 사는 게 고달프지만 음식점 자영업을 하며 열심히 살아내는 우리가, 똑같이 자영업을 하는 입장에서 당신과 동병상련으로 느껴진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응원받고 있다고 느끼는 걸 보니 아마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잘하는 음식으로 누군가를 응원한 것 같아서, 꽉 찬 보름달마냥 기분좋은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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