加 ‘진보 상징’ 트뤼도, 연이은 텃밭 패배로 위기 봉착

김이현 2024. 9. 1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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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집권 피로감에
인플레이션 못잡아 불만 폭발
당내 사퇴론 분출에도
본인은 ‘버티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7일(현지시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과 만나기 위해 오타와 의회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집권 자유당이 텃밭에서의 연이은 보궐선거 패배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야당에선 내각 불신임을 거론하고 나섰고 당내에서도 쥐스탱 트뤼도 총리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트뤼도 총리는 “할 일이 더 많다”며 사퇴 의견을 일축했다.

2015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오른 트뤼도 총리는 당시 보그·롤링스톤 등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진보 정치인이었다. 동 시기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국에선 “왜 그가 우리 대통령이 될 수 없냐”며 트뤼도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몇 년 동안 캐나다에선 주택이나 식료품 등의 가격이 폭등했다. 캐나다의 자랑 중 하나였던 공공 의료 시스템도 의료진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 진보 아이콘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트뤼도 총리가 9년 만에 위기에 몰린 이유다. BBC는 “모든 문제가 중앙 정부의 책임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국민은 트뤼도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유당, 연이은 ‘텃밭’ 패배
몬트리올의 라살 에마르 베르됭 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루이 필립 소베 퀘백 블록 후보가 17일(현지시간)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열린 몬트리올의 라살 에마르 베르됭 지역구 하원 보궐선거에서 지역 정당인 퀘백 블록의 루이 필립 소베 후보가 28.02%의 득표율을 기록해 당선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자유당 후보인 로라 팔레스티니 후보는 27.23%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해당 지역구는 2015년 신설된 이후 3번의 선거에서 모두 자유당 후보가 당선된 ‘텃밭’ 지역구다. 특히 지난 선거에선 자유당 후보가 2위 후보에게 20%포인트 이상 앞섰다. 이전 라살 에마르 지역구 때는 폴 마틴 총리가 수십 년간 터줏대감으로 지킨 지역구이기도 하다.

자유당 입장에선 충격적인 보궐선거 2연패다. 앞서 자유당은 지난 6월 토론토의 세인트 폴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바 있다. 이 지역구도 1993년 이후 자유당이 잃은 적 없는 지역구였다. 캐나다 공영 CBC방송은 “보궐선거 결과에는 투표율이 낮은 등 여러 주의 사항이 있다”면서도 “자유당이 이 지역구에서 상당한 차이로 승리하지 않고 총선에서 이기는 시나리오는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로리 턴불 달하우지대 교수는 폴리티코에 “정부가 기본적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를 피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내 트뤼도 교체 목소리 높아져
피에르 폴리에브 캐나다 보수당 대표가 16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유당은 집권 9년 만의 최대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생활비 급등과 주택난 등으로 인해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은 2015년 당선 때 63%였지만 올해 6월 28%까지 폭락했다. 반면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피에르 폴리에브가 이끄는 중도우파 보수당의 지지율은 45%로 자유당(25%)의 2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올해 5월 총선에서 몰락한 영국 보수당의 뒤를 밟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리서치업체 입소스의 대럴 브리커는 영국 보수당의 몰락과 자유당의 상황을 비교하며 “(자유당은) 끝났다”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미끄러져 나오듯 피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단언했다. 자유당의 제러미 브로드허스트도 이달 초 선거 총책임자직을 사임하면서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트뤼도 총리를 얼굴로 내년 10월 이전에 열릴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자유당 내에 퍼지고 있다. 특히 자유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체결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던 신민주당이 이달 초 협약을 파기해 언제든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6월 보궐선거 이후 웨인 롱 하원의원 등이 트뤼도 교체론을 언급한 데 이어 알렉산드라 멘데스 의원 등은 “자유당 자체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아니다. 총리의 리더십이 원인”이라며 트뤼도 사퇴를 직접 촉구하고 나섰다. 자유당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해서 처참한 수준을 유지한다면 고위 장관들이 트뤼도에게 사임을 촉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뤼도 ‘시간은 많다’ 버티기
트뤼도 총리가 16일(현지시간) 오타와 의회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뤼도 총리는 이같은 당내 움직임에도 사임 의사는 없다고 강조하며 버티고 있다. 조기 해산만 없다면 1년 안에 인플레이션 문제 등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그는 2031년까지 주택값 안정을 위해 400만채에 가까운 신규 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나 공공 자원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민 상한제를 발표하는 등 지지율 반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9일에는 캐나다은행과 영란은행 총재 등을 지낸 마크 카니를 당내 경제 성장을 위한 태스크포스 의장으로 임명했다. 카니는 향후 트뤼도 총리와 자유당 정강위원회에 권고안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는 이번 보궐 선거 패배 후 기자들과 만나 “물론 이길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우리는 그것을 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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