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배후?” 삐삐·무전기 이틀째 폭발…26명 숨져
레바논에서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통신수단으로 쓰는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가 이틀 연속 대량으로 폭발하면서 최소 26명이 숨지고 3000명 넘게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터졌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280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소지한 삐삐를 즉각 폐기하라고 알렸지만 이튿날에도 의문의 폭발이 이어졌다. 18일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등지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연쇄 폭발해 최소 14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쳤다. 전날 숨진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에서도 무전기가 터졌다.
지난 2월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간 통신보안을 위해 삐삐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전기도 5개월 전 삐삐와 비슷한 시기에 헤즈볼라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한 삐삐는 대부분 AR924 기종이며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스티커가 붙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골드아폴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기반한 ‘BAC 컨설팅 KFT’가 상표 사용권을 받아 기기들을 제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BAC가 무역중개회사일 뿐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며 “문제의 기기들이 헝가리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 매체들은 미국 등 당국자를 인용한 보도에서 이스라엘을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제작·유통 과정에서 기기마다 배터리 옆에 무게가 1~2온스(28~56g)의 폭발물과 원격 기폭장치를 심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공급사슬이 뚫려 제조·유통 과정에서 해당 기기들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무선호출기들에는 폭발 직전 신호음을 내 사용자가 호출기를 집어 들도록 만드는 프로그램도 삽입됐다고 NYT는 전했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이번 사건을 이스라엘의 테러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전과 같이 가자지구를 지원하는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는 화요일(17일) 레바논 국민을 학살한 적에 대한 가혹한 대응과는 별개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 대변인 파테메 모하제라니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테러는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며 “레바논 시민들을 죽고 다치게 만든 무선기기 폭발 사건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온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국제사회는 민간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규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에서의 극적인 긴장 고조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가리킨다”며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레바논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과 관련해 오는 20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유력한 배후로 거론되는 이스라엘이 함구하는 가운데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위한 사전공작으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다가 들킬 위기에 몰리자 터뜨렸다는 뒷얘기가 미국 정부 내에서 들려온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타국 영토 내에서 이뤄지는 군사작전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입장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를 향해 군사작전 강도를 더 끌어올릴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그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지상작전에 투입됐던 98사단을 이스라엘 북부로 재배치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레바논에서 가까운 라맛다비드 공군기지를 찾아 “무게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병력과 자원, 에너지를 북쪽으로 돌려놓고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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