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넘나들던 ‘시대의 조정자’

박상은 2024. 9. 19. 06:3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5공화국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늘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시대의 조정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삼정부에서 노동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노동계 요구를 받아들여 '근로자의 날'(3월10일)을 5월 1일로 바꿨다.

보수 정권에 몸담았지만 진보와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별세
보수정권에 몸담았으면서도
‘광주민주화운동’ 명칭 등 관철
지난 15일 타계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영정 사진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언론인 출신으로 5공화국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늘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시대의 조정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고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 서울대 법학과에 부정 편입학하자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학생운동 경력 탓에 공직을 단념하고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이후 조선일보 정치부장, 편집부국장과 서울신문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지냈다.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 하나회 출신 육군 수뇌부들이 국회의원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난 고인이 벽으로 술잔을 던진 것이 난투극으로 비화한 사건이다.

노태우정권 인수위에서 ‘5·18 광주사태’ 명칭 변경이 논의됐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제안해 관철했다. 김영삼정부에서 노동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노동계 요구를 받아들여 ‘근로자의 날’(3월10일)을 5월 1일로 바꿨다.

보수 정권에 몸담았지만 진보와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인은 자신을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평했다.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변문규씨와 딸 화숙(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영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관숙·상숙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9일 오전 열린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