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갖고 싶은데, 엄마·아빠는 안된대요” [1+1=0.6명①]
임지혜 2024. 9. 19. 06:02
10명 중 8명, 둘째 이상 출산 계획 없어
경제적부담·양육어려움 등으로 출산 꺼려
하향식 저출생 대책보다 인식 변화 이해해야
“동생 태어나면 장난감, 인형 나눠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불과 1년 전,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조르던 아이는 이젠 ‘동생’ 단어만 나와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최근 둘째 계획을 접은 박모(38)씨 부부가 이렇게 아이를 단념시켜 온 탓이다. 신혼 때 만해도 자녀 둘 이상을 꿈꿨던 박씨 부부였다. 그러나 첫 아이를 키우며 생각이 바뀌었다. 한 명을 낳아 기르기도 벅찬 세상에서 둘째를 갖는 건 언감생심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혜택이 늘고 있다지만 실제 아이를 둔 가정은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온라인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한 결과, 기혼 응답자(1130명) 10명 중 8명(77.5%)은 둘째 이상 ‘자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자녀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13.6%, ‘현재 자녀가 없다’는 응답은 8.8%다.
둘째 이상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부담’(37.6%)이 가장 컸다. 이어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28.2%), 육아 스트레스(18.4%), 난임 등 건강상의 이유(9.1%), 주거 문제(6.3%) 등 순이다.
만4세 자녀를 둔 박씨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영어유치원, 태권도·미술 등 학원과 각종 전집, 교구 등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하나뿐인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이런 환경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처한 현실 속 월급은 그대로인데 반해 지출만 빠르게 늘고 있다. 현실적 비용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물가만 올라 더 살기 팍팍해지니 둘째 낳는 것은 꿈도 못 꿀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돌봄 부담도 자녀 계획의 걸림돌이다. 초등 2학년 자녀를 둔 조모(37)씨는 “맞벌이 부부로 어린이집, 유치원 등·하원 시간 맞추는 것부터 빠듯했다”며 “아이가 아프면 휴가를 써야했다.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퇴사를 결심했을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더 이상 도움을 부탁할 수 없어 둘째 계획은 자연스럽게 접었다”고 했다.
조씨는 “(정부에선) 부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보다 중요한 건 양질의 양육”이라며 “일하는 엄마는 가뜩이나 아이에게 죄책감이 있는데, 오래도록 아이를 시설에 맡겨두는 게 달가울 리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인터뷰에 참여한 1자녀 가정 상당수는 출산·양육보다 ‘개인 삶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워킹맘 김모씨는 “아이보다 내 삶이 우선”이라며 “내 일이 있고, 남편, 친구와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돈도, 시간도 없는 현실에서 누가 더 아이를 낳을 필요성이 있다고 느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 노원에 거주하는 40대 워킹맘 임모씨도 “남편, 아이와 여행도 자주 다니고 셋 만의 시간을 갖는 게 익숙하고 편하다”며 “아이가 많아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반대로 아이가 한 명이면 비용 부담이 적고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더욱이 아이가 클수록 부모 개인의 시간이 늘어난다. ‘자녀 한 명 있으면 됐다’는 생각도 크다”라고 했다.
저출생 원인은 복합적이다. 대책도 다양하게 쏟아진다. 매 정부마다 각종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추락 직전이다. 현 정부는 지난 6월 주거 지원, 육아휴직 유연한 사용, 교육·돌봄 확대 등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내놨는데, 관건은 출산에 대한 개인의 ‘결심’이다.
이번 조사에서 자녀가 있는 가정은 출산을 결정한 주요 원인으로 ‘부부간 합의’(71.8%)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정부의 지원 정책’은 3.3%에 불과했다. 자녀 계획을 결정 짓는 것은 정부의 지원 정책보다 육아 당사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단 의미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한 번 출산을 경험한 이들은 아이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책은 하향식이었다. 자신이 경험한 시대와 다른 현실에서 윗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정해주는 것”이라며 “‘살기 힘든 사회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청년들의 인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인구위기대응기본법에 이러한 철학을 담고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의 상황에 맞게 인구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경제적부담·양육어려움 등으로 출산 꺼려
하향식 저출생 대책보다 인식 변화 이해해야
합계출산율 0.6명대를 목전에 뒀다. 장기간 이어진 초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국가 존립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저출생 해법을 찾는데 온 사회가 골몰하고 있지만 돌파구가 보이질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는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저출생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편집자주- |
“동생 태어나면 장난감, 인형 나눠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불과 1년 전,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조르던 아이는 이젠 ‘동생’ 단어만 나와도 거부감을 드러낸다. 최근 둘째 계획을 접은 박모(38)씨 부부가 이렇게 아이를 단념시켜 온 탓이다. 신혼 때 만해도 자녀 둘 이상을 꿈꿨던 박씨 부부였다. 그러나 첫 아이를 키우며 생각이 바뀌었다. 한 명을 낳아 기르기도 벅찬 세상에서 둘째를 갖는 건 언감생심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혜택이 늘고 있다지만 실제 아이를 둔 가정은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위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25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저출생 문제 인식’을 온라인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19%p)한 결과, 기혼 응답자(1130명) 10명 중 8명(77.5%)은 둘째 이상 ‘자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자녀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13.6%, ‘현재 자녀가 없다’는 응답은 8.8%다.
둘째 이상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부담’(37.6%)이 가장 컸다. 이어 ‘일과 가정의 양립 어려움’(28.2%), 육아 스트레스(18.4%), 난임 등 건강상의 이유(9.1%), 주거 문제(6.3%) 등 순이다.
만4세 자녀를 둔 박씨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영어유치원, 태권도·미술 등 학원과 각종 전집, 교구 등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하나뿐인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이런 환경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처한 현실 속 월급은 그대로인데 반해 지출만 빠르게 늘고 있다. 현실적 비용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물가만 올라 더 살기 팍팍해지니 둘째 낳는 것은 꿈도 못 꿀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돌봄 부담도 자녀 계획의 걸림돌이다. 초등 2학년 자녀를 둔 조모(37)씨는 “맞벌이 부부로 어린이집, 유치원 등·하원 시간 맞추는 것부터 빠듯했다”며 “아이가 아프면 휴가를 써야했다.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퇴사를 결심했을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더 이상 도움을 부탁할 수 없어 둘째 계획은 자연스럽게 접었다”고 했다.
조씨는 “(정부에선) 부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보다 중요한 건 양질의 양육”이라며 “일하는 엄마는 가뜩이나 아이에게 죄책감이 있는데, 오래도록 아이를 시설에 맡겨두는 게 달가울 리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인터뷰에 참여한 1자녀 가정 상당수는 출산·양육보다 ‘개인 삶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워킹맘 김모씨는 “아이보다 내 삶이 우선”이라며 “내 일이 있고, 남편, 친구와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돈도, 시간도 없는 현실에서 누가 더 아이를 낳을 필요성이 있다고 느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 노원에 거주하는 40대 워킹맘 임모씨도 “남편, 아이와 여행도 자주 다니고 셋 만의 시간을 갖는 게 익숙하고 편하다”며 “아이가 많아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반대로 아이가 한 명이면 비용 부담이 적고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더욱이 아이가 클수록 부모 개인의 시간이 늘어난다. ‘자녀 한 명 있으면 됐다’는 생각도 크다”라고 했다.
저출생 원인은 복합적이다. 대책도 다양하게 쏟아진다. 매 정부마다 각종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쏟아붓는데도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추락 직전이다. 현 정부는 지난 6월 주거 지원, 육아휴직 유연한 사용, 교육·돌봄 확대 등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내놨는데, 관건은 출산에 대한 개인의 ‘결심’이다.
이번 조사에서 자녀가 있는 가정은 출산을 결정한 주요 원인으로 ‘부부간 합의’(71.8%)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정부의 지원 정책’은 3.3%에 불과했다. 자녀 계획을 결정 짓는 것은 정부의 지원 정책보다 육아 당사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단 의미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한 번 출산을 경험한 이들은 아이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책은 하향식이었다. 자신이 경험한 시대와 다른 현실에서 윗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정해주는 것”이라며 “‘살기 힘든 사회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청년들의 인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인구위기대응기본법에 이러한 철학을 담고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의 상황에 맞게 인구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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