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라던 박범계의 돌변…尹 폭발시킨 그날의 훈시
■ 尹·이재명·조국, 당선인의 20%...법조인이 지배한다
「 가히 법가천하(法家天下)입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 당선인 300명 중 20%가 넘는 61명이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 출신입니다. 범위를 법학자(법학박사)로 넓히면 숫자는 66명으로 늘어납니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닙니다. 원내 1, 2, 3당의 수장 자리를 모두 이들이 꿰차고 있습니다. ‘정치 군인’ ‘정치 운동권’에서 ‘정치 법조인’으로의 권력 대이동이라 할 만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문제는 없을까요?
타협과 협치보다는 일도양단식 대결에 익숙한 게 법조인입니다. 당선인 중 개인적, 집단적 원한 관계인 이들도 많습니다. 타협과 협치가 아닌 극한 투쟁으로 점철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더중앙플러스 ‘이것이 팩트다’(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15)에서는 22대 국회를 특징지을 ‘법 인(in) 여의도’ 현상의 배경과 ‘여의도 법인(人)’들의 면면을 몇 회에 걸쳐 심층적으로 짚어봅니다. 이 시리즈만 보면 새 국회 법조 정치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시리즈 1화를 무료로 공개합니다.
」
「 법 인(in) 여의도, 여의도 법인(人) ① 」
" 에잇! 내가 저런 얘기나 듣고 있어야겠어? "
2021년 2월. 박범계(현 민주당 의원) 신임 법무부 장관을 만나고 온 윤석열(현 대통령) 검찰총장은 화를 참지 못했다. 제대로 화가 나면 말이 길어지는 그답게 화풀이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조국(현 조국혁신당 대표) 전 법무부 장관을 고강도로 수사해 결국 낙마시켰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문 대통령, 그리고 법무부 장관들과 반목했다.
추미애(현 민주당 의원) 전 장관과의 갈등이 개중 심했다. 지휘권 발동과 총장 징계라는 극단적 조처가 난무했던 추·윤 체제는 그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레 종막을 고했고 그 뒤를 박 장관이 이어받았다.
그는 윤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세 살 연상인 윤 총장을 사석에서 ‘석열이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한 편이었다.
윤 총장은 장관 그리고 정권과의 해빙을 기대했다. 검찰 간부 인사안을 들고 부푼 가슴과 밝은 표정으로 박 장관과 마주 앉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첫 마디가 나온 순간 윤 총장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 조국 전 장관 말인데…. "
박 장관은 대검에서 정성껏 마련한 인사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는 너무 심했다”고 장시간 일장 훈시를 했다. 꾹 참고 그걸 다 들은 윤 총장은 집무실로 돌아온 뒤 폭발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의 전언이다.
" 윤 총장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얘기를 공석은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잘 하지 않았어요. 인사권자의 의중을 거슬렀다는 자책, 그리고 이후 그 사건으로 청와대, 법무부와 반목하는 상황이 이어진 걸 고려해 그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박 장관이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오랫동안 화를 내더라고요. "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에 포진한 숙적들 간의 관계는 악연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의 입장에서 윤 대통령은 ‘검찰 쿠데타’의 주역이고 그 과정에서 희생양을 양산한 악당이었다. 대통령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구대천의 상대였다.
윤석열 정부 초기만 해도 투정 수준이던 그들의 불만이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실체로 부상하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조 전 장관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이재명 대표는 더욱 막강한 힘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 아니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제 당당히 원내 12석을 보유한 제3당의 대표이자 의원이다. 이 대표는 비례 포함해 175석의 초거대 야당을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그립으로 움켜쥐었다.
이렇게 윤 대통령과 두 정적은 5월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의 최전선에서 마주하게 됐다. 피비린내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 윤 대통령과 검찰총장 시절부터 구업을 쌓아온 ‘반(反)윤 검사’가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들은 윤 대통령, 그리고 그를 보위할 ‘친(親)윤 검사’ 출신 의원들과 무대를 여의도로 옮겨 보다 살벌한 제2라운드를 전개할 태세다.
그 위에 또 한 겹이 추가된다. ‘사법부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받으며 21대 국회에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던 판사 출신 당선인 11명이 그들이다. 마지막 외피를 ‘대장동 변호사’를 비롯한 재야 변호사 출신 인사 33명이 두텁게 에워싼다.
핵을 맨틀이 둘러싸고 지각이 그걸 보호하며 그 위에 바위와 흙이 겹겹이 쌓이더니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다. 법조 정치인의 산이다.
22대 국회 당선인 중 전통적 법조인 범주에 드는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은 61명에 이른다. 여기에 조 전 장관을 비롯한 법학 전공자(법학박사)까지 더한 범(汎)법조인은 총 66명.
전체 당선인(300명)의 20~22%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비중이다. 이번 당선인들의 출신 직역 중 가장 큰 비중인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전 국회와 비교해 봐도 증가세가 괄목할 만하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19대 42명, 20대 49명, 21대 46명이었다. 61명이라는 이번 당선인 수는 직전 국회와 비교하면 32%나 늘어난 수치다.
법학박사들을 추가해 범(汎)법조인 수를 따져봐도 19~21대 국회는 43~52명 수준에 그쳤다. 66명인 이번 국회와는 격차가 크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검사 출신 윤 대통령(국민의힘), 변호사 출신 이재명 대표(민주당), 법대 교수 출신 조국 대표(조국당) 등 원내 1, 2, 3당 수뇌가 모두 법으로 밥을 먹은 이들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범(汎)법조인이 틀어쥐었다는 말이다. 전례가 드문 일대 사건이다.
가히 권력의 대이동이라 표현할 만한 현상이다. 한국 정치의 주류는 1960년대 이후 30년간 ‘정치 군인’이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권을 시발, 또는 접점 삼아 민주화운동 세력을 주축으로 한 ‘정치 운동권’이 군인들을 대체하면서 또 다른 30년을 호령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사상 첫 재조(在曹) 법조인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난 대선에 이어 한국 권력의 축이 ‘정치 법조인’으로 완전히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일단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 자유민주주의는 법이 정치에서 상당히 많은 공간을 차지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늘어나는 건 하나의 추세죠.(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 "
" 군부 등 주도 세력의 기술 관료 역할을 하면서 정치에 깊이 개입해 있던 법조인들이 기존 세력의 퇴조 이후 자연스럽게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거죠. 제가 ‘법민주화의 역설’이라고 명명한 현상입니다. 변호사 수가 많이 늘었다는 사실도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그렇다면 이게 옳은 방향의 변화일까. 긍정적 시각도 있다.
" 법치주의가 심화하고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전문 영역에서 전문적 식견을 가진 법률 전문가가 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법조인들은 법의 해석이 아니라 법의 제정을 담당해야 할 필요성이 크죠.(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니 입법 전문성, 법률 전문성이 있는 법조인이 당연히 일정 수준 필요합니다.(김종철) "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일단 비중이 너무 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올 초 내놓은 ‘국회와 주요국 의원의 직업적 배경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의원 중 법조인 비중이 3%(2021년 기준)에 불과하며 프랑스도 5.4%(2022년 기준)에 그친다. 영국 하원의 경우에도 7.2%(2019년 기준)로 기업(17.2%), 연구직(8.9%) 출신보다 적다.
한국은 의원 중 법조인 비중이 39%(2023년 기준)로 압도적인 미국이나 독일(22.8%, 2021년 기준)과 함께 법조 정치인이 유독 많은 국가로 분류된다.
" 국민의 대표를 뽑는 작업은 과소 대표되는 계층이 없도록 하면서 골고루 밸런스를 갖춘 결과를 끌어내야 합니다. 법조인 직군이 과잉 대표되고 있는 걸 부인할 수 없어요. 이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어떤 주름살을 지우고 있다고 봅니다.(신평 변호사·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 60명 이상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건 답답한 부분이죠. 거꾸로 보면 비법조인에게는 국회 의석이 240석에 불과하다는 의미예요. (한상희) "
더 큰 문제는 일도양단식 법조적 특성이 과연 정치와 어울리느냐는 점.
" 법치는 상대적으로 편협한 가치관입니다. 법은 중간 영역이 적어요. 옳고 그름만 있으니까.(김종철) "
" 정치의 기본은 의사소통입니다. 적과도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유권자나 시민과의 대화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법조인 출신은 정치 영역을 법적인 사고로 채워넣고 있어요. 선거 과정의 모든 트러블을 고소, 고발로 끝내는 게 단적인 예죠. 정치의 영역인 소통, 협의, 화합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한상희) "
" 법조인은 ‘청산형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에요.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사고만 하는 거죠. 그런데 정책의 영역에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해나가면 좋겠습니다’라는 식의 생성형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법조인에게는 이게 부족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예요.(신평) "
더욱 걱정스러운 건 이런 법조 정치인 집단의 수뇌부와 핵심 구성원들이 사적 원한으로 얽히고설킨 이들이라는 점이다. 22대 국회 회기 내내 개인감정에 기반한 극한 대립이 이어질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는 의미다.
" 정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거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요. 사적인 관계로 얽혀 있는 이들이 정치권력을 대표하게 됐을 때 합의의 추구보다는 갈등의 심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예상 가능하죠.(김종철) "
결국 ‘청산형 사고’에 익숙한 법조인들이 국회에서 서로를 ‘청산’하려는 극한투쟁을 이어나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이미 총선의 승자들은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각종 특검법의 추진은 물론이고 개헌과 탄핵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이재명·조국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법조 정치인이 다음 대선에서 맞붙을 수 있다는 점도 충돌의 강도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각 파당을 대표하는 법조 정치인이 중요 사안마다 개인적 은원과 법적 원리주의를 내세워 사사건건 대립할 경우 타협과 합의에 의한 정치는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떤 위치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다음 회부터 22대 국회를 좌지우지할 여의도 법인(人)들을 그룹별로 세분해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 📝‘이것이 팩트다’ 목차
「 “내가 조국 얘기 들어야 해?”…박범계의 훈시, 尹 폭발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3979
尹-이성윤 원래 절친이었다…여의도 입성한 ‘반윤’ 검사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642
꼬박 7시간 100쪽 고쳐쓴 尹…“밥먹자” 버너로 찌개 끓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654
文 블랙리스트 캐던 주진우 “나 한동훈입니다” 뜻밖 전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0268
尹 부부에 고발장 날렸다…‘1기수 선배’ 양부남의 돌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1859
文 불만이 尹에서 터졌다, ‘찐명 초선’ 된 민변 맏형과 막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3591
변시만 죽자고 판 거 아니다…‘로변’ 초선들, 뜻밖 경력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5061
"동네형 尹, 너무 밀어붙였다" 젊은 초선이 본 대통령 패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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