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트럼프가 싫다, 그렇다고 암살하는 건 더더욱 싫다" [암살 모면 | 현지 르포]
“여긴 범죄 현장입니다(This is crime scene). 안으로 더 들어가선 안 됩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 입구. 형광색 조끼를 착용한 현지 경찰이 중앙일보 취재진의 접근을 막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두 번째 암살 시도가 발생한 다음날부터 이틀간 취재진이 찾은 사건 현장에는 지역 보안관과 경찰,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팜비치 국제공항과 맞닿아 있어 차로 5분이면 닿는 트럼프 소유의 해당 골프장은 진입로 양방향을 경찰이 막아선 채 출입을 통제했다.
FBI 요원들은 암살 미수범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58)가 머무르며 몸을 숨긴 덤불 주변 현장감식에 집중했다. 주황색 폴리스라인 바깥에서는 10여 개 팀의 현지 방송 매체가 분주하게 상황을 중계했다. 골프장 입구 주유소 마트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평생 이렇게 많은 경찰과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자택 앞 경찰 ‘3중 4중’ 검문검색
리조트 정문 주변에는 비밀경호국(SS)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망루가 높다란 곳에 설치돼 주변 일대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현지 경찰은 “트럼프에 대한 상시 경호 인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암살 미수 사건 직후 경비 인력이 대폭 증원됐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려견과 산책 중이던 로저 포드는 “소총을 든 괴한이 12시간 넘게 우리 마을 골프장에 몰래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골프장 주변 고등학교 재학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카를로스는 “용의자가 도주하다 만약 우리 학교에 침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봤다”며 “이곳이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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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는 공화당, 팜비치는 민주당 강세
플로리다주는 2000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앨 고어에 통한의 패배를 안긴 초격전지였다. 앨 고어는 당시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에 전국 득표수에서는 앞섰지만, 선거인단 25명이 걸린 플로리다주에서 불과 1784표 차로 졌다. 승자 독식제를 채택한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면서 부시가 당선될 수 있었다. 득표율로 따지면 48.84%(고어) 대 48.85%(부시). 0.01%포인트 차였다.
이에 전면 수작업 재검표 논란이 일었지만, 연방 대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부시의 당선이 확정됐다. 대선 승패를 가르는 핵심 경합주였던 플로리다는 이후 대선에서는 공화당이 1~5%포인트 차 우세를 유지하면서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지역)가 됐다.
다만 이번 사건 현장인 팜비치 카운티 표심은 플로리다주와 또 다르다. 서울의 10배 넓이에 달하는 팜비치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중산층과 대졸자 이상 비율이 높고, 역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으로 꼽히는 히스패닉과 흑인 비율이 꾸준히 늘어 전체 인구의 40.6%(2020년 기준)에 달한다. 202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이 55.97%를 득표해 공화당 후보 트럼프(43.21%)를 넉넉하게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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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자들 “선거 임박, 경호 늘려야”
하지만 취재진이 찾은 현장에서는 트럼프 자택과 가까운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트럼프 지지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흑인 목사 로널드 잭슨(50)은 “트럼프가 유세 일정이 바쁘겠지만 이곳에 거의 매주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며 “선거가 가까워져 열기가 고조될수록 더 많은 경호ㆍ보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골프장 입구에서 만난 백인 마이클 진(66)은 “트럼프는 이 나라를 걱정하는 좋은 사람인데 왜 그를 죽이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을 지켜줄 트럼프를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을 현 대통령과 똑같은 수준에서 경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로는 ‘치솟는 물가를 잡고 미국 경제를 되살릴 적임자’ ‘억만장자이면서도 애국심 하나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등의 이유를 대면서 미국에 어떤 종류의 정치적 폭력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을 무당파라고 소개한 제프 로즈(63)는 “나는 지지 정당이 없지만 이건 옳지 않다. 정치적 폭력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never never never) 안 된다”고 역설했다. 진 역시 “선거가 과열됐다. 트럼프를 지지하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 대선 후보)을 지지하든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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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지지자들 “극단적 분열이 사태 원인”
해리스 지지자들도 극단적인 정치 분열과 갈등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보고 “하고 싶은 말은 ‘폭력’이 아니라 ‘투표’로 표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던 윌리 카슨(72)은 “백악관을 망가뜨린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싫어한다”면서도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고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는 건 더욱 싫다”고 말했다.
마러라고 리조트 부근에서 만난 토마스 웰스(78)는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취재진을 향해 “그는 당신과 같은 아시아인도 안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투표장으로 가면 된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목숨을 빼앗으려는 극단적 방식은 후진적”이라고 말했다. 웰스는 “가령 트럼프와 공화당의 낙태 금지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달려가 해리스를 찍으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팜비치=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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