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갈 시간에 성착취방 경력 쌓겠다는 중·고생도 나왔다"

김서원 2024. 9.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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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가 알려지고 난 뒤 텔레그램 내 지인능욕방에서 "뉴스에 나와도 쫄지 말고 지능(지인능욕)해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리셋은 이같은 성착취 단체방을 모니터링 해 경찰 등에 신고하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목적의 비영리 단체다. 사진 리셋 제공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권리로 여기는 가해자들이 더 많아졌다. 이들에게 불법 합성물은 그저 일상 속 놀이로 취급될 뿐이다.”
지난 5년간 성착취물을 취급하는 온라인 채팅방 등을 모니터링한 비영리 단체 ‘리셋(ReSET)’은 활동 초기와 비교할 때 달라진 디지털 성범죄 양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리셋은 지난 2020년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당시 여성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익명의 활동가들은 텔레그램·디스코드 등 메신저 플랫폼에서 성착취물 등 증거를 수집해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거나 국회에 입법 제안서를 제출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 등 해외에서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알리기 위해 시위에도 나섰다. 지난 9~10일 두 차례에 걸쳐 리셋의 활동가들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초·중·고등학생 운영자도 등장…불법 합성물, 놀이로 취급”

리셋이 활동하는 동안 디지털 성범죄 수법은 더 대담해지고 피해는 더 치명적인 형태로 변했다. 과거엔 몰카(몰래 찍는 사진) 등 모르는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지역(서울·인천·대구 등)방’, ‘직업(군인·교사·기자 등)방’처럼 지인의 신상을 토대로 한 범죄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특히 10대 등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리셋의 한 활동가는 “초등학생이 운영하는 성 착취방도 있고, 중·고교생들이 ‘학교 갈 시간에 성 착취 채팅방 매니저로 경력을 쌓겠다’며 운영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호소하는 경우도 봤다”며 “가해자의 연령대가 점점 더 어려지고, 성범죄가 일상이자 놀이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리셋은 지난달 딥페이크 성범죄물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커지면서 경찰이 특별 단속에 나섰지만, 텔레그램 등에선 성 착취물 제작·공유방이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딥페이크봇(불법 합성물 제작 프로그램) 채널의 경우, 참여자가 22만명에서 39만명으로 순식간에 늘었다고 한다.

리셋 측은 “지금도 유명 성 착취방 운영자가 새로 연 지인 능욕 방엔 하루 만에 2만명씩 몰린다”며 “가해자들은 ‘몇 주, 몇 달만 지나면 또다시 잠잠해질 것’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언론에 보도될수록 ‘OO 언론사 기사에 나온 바로 그 방’, ‘공짜 홍보 감사’, ‘얘들아, 형 뉴스 탄다’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일부 성 착취방에서는 “뉴스에 나와도 쫄지 말고 지능(지인 능욕) 해라. 기사를 낸 기자도 능욕해라” 등의 성 착취물 제작·유포 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리셋은 국내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알리기 위해 유럽 등지에서 여성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리셋 제공

‘텔레그램→디스코드→라인→X→커뮤니티’ 연쇄 유포

이들은 텔레그램뿐 아니라 다른 메시지 플랫폼과 다크웹 등 브라우저를 거쳐 성범죄물이 유포되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에서 제작된 성 착취물이 디스코드를 통해 퍼져 라인에서 거래되고 X에 홍보되며 결국 일반 온라인 커뮤니티에까지 풀리는 식이다. 텔레그램 내 인스타그램 해킹봇을 이용해 유출한 사진으로 딥페이크물을 만들기도 한다. 리셋의 활동가는 “이런 방식으로 대거 유포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특정 피해자를 향한 사이버불링(온라인 집단 괴롭힘)부터 추가 범죄 교사까지 2차 가해 수법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성 착취물을 판매하는 해외 채널들도 많기 때문에 사실상 가해자를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인권 의식 부족”


국내에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해진 이유로 이들은 ‘부족한 인권 의식’을 꼽았다. 리셋의 활동가는 “기술 발전 속도에 인권 의식이 못 미치고 있다”며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과 디지털 기술이 만나 성범죄 형식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IT 플랫폼의 규제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리셋 측은 “현행법은 실제 유포했거나 유포 목적이 입증된 제작 행위만을 처벌해 합성물 소지·시청자는 처벌하지 못한다”며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만 허용되는 위장 수사도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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