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맥주가 낫다"던 영국남자…뜻밖의 '벽돌책' 들고 컴백

전수진 2024. 9.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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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마지막 후손에 관한 소설을 펴낸 다니엘 튜더. 지난 11일 서울 덕수궁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장진영 기자


맥주, 북한, 명상에 이어 구한말 왕자까지. 영국인 다니엘 튜더(42)가 한국에 살며 탐구해온 대상이다. 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서울 특파원으로 재직하던 2012년, "(북한) 대동강맥주가 (한국) 카스보다 맛있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주장은 역설적으로 한국 수제 맥주 붐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그는 북한의 '장마당 자본주의'를 통찰한 공저를 냈고, 명상 앱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등 영역을 다채롭게 확장했다. 이번엔 장편 소설, 그것도 격동의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책으로 돌아왔다. 지난 11일 그를 만난 서울 덕수궁은 그의 신간, 『마지막 왕국』(김영사)의 주요 배경 중 하나다. 고종이 귀인 장씨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의친왕'으로 잘 알려진 이강의 이야기를 팩트와 상상력을 더해 풀어냈다. 장편 소설, 그것도 600쪽을 넘기는 이른바 '벽돌책'은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장편 소설이라니, 의외다.
A : "이코노미스트 기자 시절, 우연히 이강의 아들인 이석 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이강의 이야기에 매료됐는데, 그가 성인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왕족이었지만 평범한 한 남자로서 방황하고 성장하는 과정 때문이었다. 정체성 트라우마를 겪었을 이강이 술과 이성 관계 등에서 방황을 거듭하다 독립에 뜻을 세우는 스토리를 더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이강. 의친왕으로도 알려져있다. 중앙포토

Q : 김란사라는 여성 캐릭터 역시 존재감이 있는데.
A : "이화학당을 통해 조선 여성에게 근대 교육을 제공했던 여성인데, 놀라울 정도로 잊힌 인물이다. 만약 남성이었다면 동상이 세워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어린 딸과 떨어져 미국에서 활동하고, 일본에 맞서는 과정에서 독살을 당했던 그의 이야기를 활자로 꼭 남기고 싶었다."

Q : 소설의 형식을 취한 까닭은.
A : "논픽션을 쓰기엔 증발해버린 팩트들이 너무 많았다. 관련 자료를 탐독하고 읽고 공부한 뒤 상상력을 살짝 발휘해서 이야기를 엮어냈다."

Q : 이석 씨 등의 소감은.
A :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이강이 방황하는 모습을 상세히 그려서, 후손으로서는 언짢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주어 고맙다'는 답이 오더라."

다니엘 튜더. 소설 작업에 영감을 준 덕수궁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진영 기자

Q : 사업부터 소설까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진화의 동력은 뭔가.
A :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걸 찾아 헤매는 내 성정 때문이다. 일에 싫증을 잘 내는 편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웃음). 이왕 태어난 거, 다양한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한 가지 분야만의 최고가 되기보다는, 마음의 문을 열고 수많은 경험을 받아들이며 살기를 원한다."

Q : 그사이 개인적 삶도 많이 바뀌었다.
A : "2년 전만 해도 내가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생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만리마 속도로 바뀐다(웃음). 와이프는 한국어 번역 감수뿐 아니라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출산 장면 등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다."

Q : 둘째 아이도 내년 2월에 태어날 예정인데.
A : "둘째도 딸이라고 한다(웃음). 아버지가 되고 보니 생각도 많아졌고,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다음 책은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짚어보는 논픽션으로 준비 중이다."

Q : 한국인과 결혼한 영국인의 눈으로 볼 때, 문제는 뭔가.
A : "경쟁력을 갖춘 아이로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이 과한 게 아닐까. 아이용 냉장고, 아이용 세제까지 따로 있을 필요가 솔직히 있는지 궁금하다. 돈과 시간이 과도하게 들다 보니 결국 출산을 꺼린다. 아이를 낳는 건 통계를 보면 부유층인데, 이들이 또 출산을 했다고 지원금을 받아가는 것도 아이러니다. 일하는 문화부터 아이에 대한 생각까지, 전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변화가 필요하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아직도 북한 맥주가 더 맛있나.
A : "모르겠다(웃음). 일단 북한 맥주를 맛본 지 너무 오래됐다. 하지만 꼭 말해두고 싶은 게, 내가 한국 맥주를 싫어했던 건 아니라는 거다. 오늘처럼 덥고 습한 날 한 잔 쭉 들이켜면 딱 좋은 게 한국식 라거 맥주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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