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또 다른 ‘안나’는 없어야 한다

전재우 2024. 9. 19.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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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유미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안나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계속한다.

그는 안나의 실체를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안나의 가짜 삶과 과거가 들통날 위기를 맞자 모든 것을 조작한다.

안나는 공상허언증 또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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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유미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선생님과의 스캔들로 퇴학을 당하고 서울로 학교를 옮긴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한 갤러리에 취업한다. 사소한 거짓말로 기회를 얻자 유미는 다른 삶을 살기로 한다. 갤러리 이사의 학력과 경력을 훔쳐 안나로 개명한다. 기반이 달라지자 생활도 달라졌다. 안나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계속한다. 대학교수 자리를 얻고 유망한 사업가와 결혼한다. 남편은 정치에 입문해 서울시장 후보에 나선다. 그는 안나의 실체를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안나의 가짜 삶과 과거가 들통날 위기를 맞자 모든 것을 조작한다. 등장인물들은 신분위조 가짜논문 주가조작 횡령 탈세 살인까지 한다. OTT 드라마 ‘안나’의 줄거리다. 긴 연휴 덕에 ‘정주행’했다.

안나는 공상허언증 또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상허언증 환자들은 거짓을 반복하면서 허구를 사실로 확신하게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자기 과시욕이 높다고도 한다. 신분 상승 또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거짓과 망상을 해결수단으로 선택한다. 보통 일시적이거나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인지한다고 한다.

반면 리플리 증후군 환자는 자신의 거짓말 거짓행동 거짓상황에 대한 인식을 못한다.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씨’(1955)라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얼마 전 작고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을 스타의 반열로 올려놓은 ‘태양은 가득히’나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 등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화차’도 비슷한 내용이다. 모든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다. 실재하는 심리 현상이지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공식 질환으로 등재돼 있지 않아 환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없다.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쌓인 열등감 때문에 자신만의 허구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자기 합리화가 쌓여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얻은 지위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믿는다. 들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나 죄책감도 없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기도 해 아무도 잘못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사회지도층이나 공인이 허언증이나 리플리 증후군을 갖고 있으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리플리 증후군은 그릇된 비교 의식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부와 명성, 성공과 지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 과도하게 비교하면서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사람이 가진 진정한 가치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신분과 자격, 인기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사회라면 리플리 증후군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릴지도, 어떤 면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바보로 취급될지도 모른다”며 “부와 명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치료법은 상담뿐이다. 왜곡된 인지를 가진 경우가 많아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도록 거짓으로 얻은 지위를 내려놓고 오랜 기간 심리상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배려해줘야 한다. 오래 걸리고 어렵더라도 고쳐야 하는 질병이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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