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생명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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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예수교장로회조선노회' 3차 회의 때 '헌의'라는 단어가 회의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용어 순화라는 명분보다 익숙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랑그는 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적 형태이며, 파롤은 화자와 사용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의 모습을 말한다.
마치 악보(랑그)와 연주(파롤)처럼 언어도 본래 형태에 의미와 해석이 실려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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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예수교장로회조선노회’ 3차 회의 때 ‘헌의’라는 단어가 회의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윗사람에게 아뢴다’는 뜻으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된다. 우리나라 대부분 교단의 노회나 총회 부서들이 의안으로 상정하는 안건을 의미한다.
‘촬요’도 오랜 세월 사용되는 교회 용어다. 주로 노회들이 총회에 보고하는 자료를 촬요라고 하는데 ‘요점만 간추려 모았다’는 뜻이다. “가(可)하시면 ‘예’ 하시오”도 그렇다. 안건 토의를 마친 뒤 총대들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회의 진행자가 물어보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한국말이 서툴렀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고 한다. 1900년대 초 장로교단이 막 태동했을 초창기 총회장을 맡았던 선교사들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사용했던 일종의 확인절차였다.
사회에선 오래전 사어가 됐지만 교계에선 여전히 쓰이는 회의 용어인 셈이다. 이 같은 예스러운 교회 언어는 구습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전통 중 하나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교회 안에만 있는 이 같은 고어를 현대어로 순화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흠석사찰’이나 ‘천서’ 같은 표현은 ‘질서관리 위원’ ‘총대 자격 심사’라는 친숙한 표현으로 대체한 교단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헌의’와 ‘촬요’가 대표적이다. 이를 ‘상정’과 ‘요약’으로 바꾸려던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용어 순화라는 명분보다 익숙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회가 보수적이라는 걸 대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서 한번 결정된 걸 바꾸는 건 이처럼 어렵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는 자신의 저서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을 꼽았다. 랑그는 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적 형태이며, 파롤은 화자와 사용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의 모습을 말한다.
지난 11일 이전 개관한 이회영기념관은 개관 기념 특별전 ‘등불 아래 몇 자 적소’를 통해 이회영 선생이 남긴 육필편지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유품은 13통의 편지 20장과 편지봉투 8장, 부친 이회영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딸 규숙의 전보 3장이다.
특별전의 제목이 시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쓴 편지의 첫 문장(랑그)으로도 보이지만 풍전등화의 현실 속에서 독립에 인생을 바친 이가 전하는 생존신고(파롤)로도 이해된다. 마치 악보(랑그)와 연주(파롤)처럼 언어도 본래 형태에 의미와 해석이 실려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 둘 중 하나만 있는 건 공허하다.
9월은 ‘총회의 계절’로 불린다. 우리나라 주요 장로교단들이 이 시기 집중적으로 교단 정기총회를 열기 때문이다. 여러 의안을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총회에서는 말이 넘쳐난다. 말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20세기 초 총회에서 사용하던 표현이 지금까지 쓰이는 것처럼 총회에서 나온 말은 문자로 기록돼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다. 총회의 결정이 수많은 교회와 교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불문가지다.
총회에서의 말이 의미를 지녀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푯대가 돼야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어서 때때로 아쉽다.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주장이나 교인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총대 몇몇의 사견이 법으로 제정돼 교회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터져 나오는 수많은 말에 역사의 무게가 실리길 기대하는 건 과욕이다.
올해 총회에서는 어떤 말들이 나올까. 총회에서의 말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꺼져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로 피어나길 바라본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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