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참모의 아첨, 권력의 비극
“백악관 회의는 아첨 경쟁장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초기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R 맥매스터의 회고다(『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트럼프 백악관에서 나의 임무 수행』). 맥매스터는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등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책의 중심을 잡는 균형추 역할을 하며 ‘어른들의 축’으로 불린 인물 중 하나다. 충동적이고 예측불허인 트럼프에게 쓴소리와 직언을 마다치 않다가 경질됐다. 아첨꾼 득세는 트럼프 정부의 비극이었다. 맥매스터는 “대통령님의 직관은 항상 옳아요” 같은 아첨이 난무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은 결국 2020년 대선 패배의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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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 국회 개원식에 불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참모들 심기경호 대신 고언해야
」
아첨이 고언을 밀어내면 정권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동서고금에 숱한 사례가 있다. 윤석열 정부도 심상찮은 징후가 있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37년 만의 대통령 불참이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직원 조회에서 “대통령을 향한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오라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 심기가 편치 않을까 봐 국회 개원식 참석을 권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것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 체제 출범 후 처음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불참했다. 한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을 추석 이후로 미뤄놓고선 이달 초 친윤 성향의 일부 최고위원 등과는 만찬을 했다. 모아놓고 보면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와도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편으론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서 고립되는 풍경으로 비친다. 대통령이 ‘내 편’만 만나게 하고, 거북한 얘기를 듣지 않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보좌인가. 심기경호가 참모들의 역할이어선 안 된다.
경제 문제에선 정부 내에 자화자찬이 넘쳐난다.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정브리핑에서 ‘한국의 수출 증가는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외신을 소개하며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이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그게 민생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 아닌가. 대통령은 ‘30개월 연속 최고 고용률’ ‘실업률 역대 최저’ 등 고용 호조를 자랑했다. 그러나 얼마 뒤 8월 취업자의 54.6%가 근로시간 36시간 미만의 단기 근로자라는 통계가 나왔다. 역대 최고다. 일자리를 찾는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쉬는’ 이도 256만여 명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다. 이런 ‘지표 착시’가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이 브리핑한 경제 상황은 참모들의 보고를 기반으로 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지표 위주로 보고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추석 연휴 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졌다(한국갤럽 20%, 리얼미터 27%). 아직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았는데, 지지율만 놓고 보면 레임덕의 전조다. 이런 지지율로는 연금·교육·노동·의료 등 4대 개혁의 동력을 얻기 어렵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70%) 이유 1, 2위인 의대 정원 확대(18%), 경제·민생·물가(12%)는 새로 불거진 게 아니다. 정부의 상황 인식과 처방이 민심이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통 미흡(10%), 독단적·일방적(8%), 통합·협치 부족(3%) 등 ‘불통’에 대한 불만도 높다. 국회 개원식 불참 등 대통령의 나홀로 행보는 그런 이미지만 강화했을 것이다. 용산의 참모들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짚고 가야 할 대목이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이 아첨 경쟁장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트럼프가 그걸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참모를 선택하고, 그 참모가 어떻게 일하게 할지는 결국 대통령에게 달렸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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