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정부와 가계의 쌍끌이 부채폭탄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을 증명하려는 듯 정부와 가계가 쌍끌이로 빚을 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가채무와 가계 빚을 합산한 액수가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었다. 올해 2분기 말 3042조1000억원이었다. 지난해 2401조원을 기록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달하는 규모다.
빚 무서운 줄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 차원에서는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2010년대 초반 남유럽 국가들이 그랬다. 북유럽만큼 능력도 안 되면서 국민을 위한 복지라는 이름으로 선심성 재정을 펑펑 뿌린 탓에 심각한 재정 위기에 몰렸다. 정치인들은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도입했고 나라 곳간이 바닥날 때까지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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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심성 복지로 나랏빚 급속 증가
개인은 과도한 대출로 부채 많아
국가나 개인이나 빚 두려워 해야
」
그리스에선 재정 파탄으로 경제위기가 몰아닥쳤다. 전 국민의 임금이 하락하고 연금 삭감에 이어 의료보험 중단이 뒤따랐다. 결국 음식물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처량한 모습이 전 세계로 공개됐다. 그리스 사태는 ‘공짜 점심 없다’는 경제 상식을 확인시켰다. 나랏빚으로 펑펑 퍼주는 경제 체제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윤석열 정부가 3년 연속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채무를 불과 5년 만에 400조원 넘게 늘려놓는 바람에 긴축재정은 고육지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처럼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베네수엘라처럼 석유가 펑펑 나는 것도 아닌 한국으로선 건전한 재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지금은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있는 만큼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때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재정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같은 현금 살포성 정책으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다. 굳이 이 정책을 쓴다면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방안대로 선별지원이 합당하다.
더 크게 보면 정치인들은 이 같은 대중영합적 정책을 뛰어넘어야 한다. 숨 막히는 규제를 피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기업들이 유턴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을 개선하면 25만원을 뿌리지 않아도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에 활력이 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법안조차 정쟁에 밀려 진척이 없다.
개인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올 2분기 가계신용(가계 빚)은 1900조원을 바라보는 1896조2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게 되자 한국에서도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올 초부터 가계부채가 거듭 불어나기 시작했다. 20대 신혼부부가 지난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14억5000만원에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양가 부모로부터 3억원을 증여받고 그동안 모은 2억여원에 주택담보대출 1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영끌을 넘어 초영끌이다. 올 상반기 대출을 낀 주택 구매자의 6%가 10억원 넘게 빌렸다는 통계도 나왔다.
풍요로운 삶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대출로 집을 사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1989년 무렵 집값은 하룻밤 자고 나면 올랐다. 은행에 가면 앞으로 집값 상승분까지 고려해 대출을 해줬다. 그런 묻지마 투자의 광풍 끝에는 ‘잃어버린 30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경기침체가 이어졌고 깡통주택이 속출했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정치권이 기업을 살리는 법안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로 볼 때 추세적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건 어려워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저출생·고령화 속도로 봐도 그렇다. 인구가 줄어드는 판에 부동산 투자로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건설업계에선 1인 가구 증가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2040년부터는 주택가격 하락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 불패의 끝자락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잉 대출은 자칫 부채 폭탄을 스스로 떠안는 선택일 수 있다.
빚 무서운 줄 모르는 분위기를 만든 정책당국의 실책은 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5.5%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때 한국은행은 3.5%에서 멈춰섰다. 그 탓에 한은은 지금 금리를 내리기도 애매해졌다. 정부는 대출규제를 너무 풀었다. 다가오는 금리 인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면 정책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뒤늦게 대출을 조이고 있지만 초영끌 바람이 잡힐 수 있을까.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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