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사라져가는 전통과 그 창조적 변형

2024. 9. 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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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고 추석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지만 기온은 여전히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늦여름 매미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내 고향 알래스카 근처 숲에서 촬영한 1999년 영화 ‘림보’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시사회에 참석한 현지 시민들은 배경음으로 독수리나 까마귀 울음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귀뚜라미를 비롯한 온갖 낯선 곤충 소리가 들리자 당황했다. 촬영 후에 음향을 삽입한 담당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록수림에 와본 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특정 물리적, 문화적 공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외부인이 임의로 자기 생각을 반영하면 어떤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 내 고향 원주민 예술가 갈라닌
틀링깃족 토템폴 재구성 시도
서양 악기의 국악 연주와 비슷
토속 예술이 지켜야 할 정수는?

이 교훈은 알래스카 원주민 틀링깃족 출신인 멀티미디어 예술가 니콜라스 갈라닌(틀링깃족 이름 Yeil Ya-Tseen)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틀링깃족은 내 고향 지역에 오래 전부터 살았던 원주민인데, 이 때문에 나는 한국뿐 아니라 고향에서도 여러 면에서 내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국에 수년간 살면서 나는 갈라닌의 작품들을 꾸준히 봐 왔다. 토종 예술가들과 그들의 전통을 왜곡 및 파괴하는 외부인들을 묘사하는 갈라닌의 작품은 내가 현대 국악에 작용하는 원동력을 고찰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갈라닌의 최신작 ‘내 생각에는 이와 같다(기억과 간섭)’는 2019년 작품 ‘내 생각에는 이와 같다(황금)’의 변형으로 현재 뉴욕에 전시 중이다. 갈라닌의 신작은 청동으로 칠을 한 목조 작품으로 틀링깃족의 핵심 예술인 토템폴의 변천을 추적한다. 18세기 후반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침입 전에 토템폴은 원주민 조각가의 창작품이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전통적인 삼나무가 아닌 열대 수종으로) 만든 싸구려 모조품들이 여름 휴가철마다 거대한 크루즈선을 타고 알래스카를 방문하는 150만 명의 관광객들에게 팔려 나간다. 갈라닌은 위풍당당한 청동 토템폴 조각에 그가 직접 모조품 몇 점을 자르고 쪼개 만든 장작을 끼워 맞추어 조합했다.

틀링깃족 출신 예술가 니콜라스 갈라닌의 ‘토템폴 행렬’이라는 작품. [SNS 캡처]

발리 산 모조품은 태평양 북서부 해안 원주민들이 만든 독창적이고 다양한 토템 예술품의 디자인, 색상, 크기, 세부사항을 대강 모방했을 뿐, 그들의 문화나 관습 또는 토템의 예술적·역사적 목적을 고려하지 않았다. 2019년 작품에서 갈라닌은 쪼개진 나무 조각들에 금빛 칠을 하고 관객에게 그것들을 조립하라는 과제를 던졌다. 최근 작품에서 그는 이 조각들을 직접 재구성했다. 유제니 차이(Eugenie Tsai) 뉴욕 전시회 큐레이터는 “작가는 청동을 씌운 나무토막들을 쌓아 올리고 용접해 혼란스러운 형상을 구성했다. 이는 식민지화로 인해 대량 파괴된 토착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반영한다”라고 설명한다.

이 조각품을 국악이라고 한다면 산조(散調)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작곡가나 연주자가 연주하는 산조가 될 것 같다. 고유의 리듬은 사라졌거나 부적절하게 여겨지고 계면조(界面調)의 곡선과 우조(羽調)의 직선은 없어져, 마치 산조를 서양식으로 작곡해 음색을 굴절시키지 못하는 악기로 화음을 연주하게 하는 꼴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와 같다…” 라고 시작된 제목은 “…그런데 실제로 어떠하든 전혀 상관없다” 또는 “…실제로 어떨지 알고 싶지만 이제 그걸 알려줄 사람이 없다”라고 끝날지도 모르겠다.

갈라닌은 그의 작품을 통해 동족들이 남은 것들(‘물질과 기억’)을 가지고 문화를 재건하려는 노력과 그런 재건 사업이 몇 세대에 걸친 간섭 탓에 필연적으로 해체되었음을 인정한다. (한국과 알래스카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간) 기독교 선교사들은 토템을 우상으로 오인했고 그것들을 베어내 태우게 했다. 비슷한 예로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시절에 문화적 붕괴가 일어났다. 시나위에서 무속적 뿌리가 점차 약화하고, 로널드 말리앙카이 교수가 그의 저서 『상한 소리들(Broken Voices)』에서 논했듯이 황해도 ‘배뱅이 굿’을 ‘배뱅이 소리’로 바꾸려는 노력 등이 그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와 같다(황금)’ 후속으로 ‘내 생각에는 이와 같다(기억과 간섭)’를 제작하기 전에, 갈라닌은 2023년 12개의 전통 토템을 조각하여 주노 시내의 크루즈 부두에 일렬로 세웠다. 그는 ‘그것이 어떠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토템폴 행렬(Kooteeyaa Deiyi)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토템폴 작품은 옛 틀링깃족 마을의 집 모퉁이나 묘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 위치한다. 어떤 원주민 노인들은 이 새로운 토템 ‘행렬’이 전통적인 위치나 목적과는 동떨어졌다며 비판했다. (국악 종사자들을 비롯한 전세계 전통 예술가들은 이런 류의 비판에 익숙할 것이다.)

이전 작품에 대한 에세이에서 갈라닌은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어떤 피사체에서 영혼과 역사적 맥락을 분리하면 그 문화의 정수에서 말단이라 할 뼈다귀밖에 남지 않게 된다. 모든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지만, 토속 예술가로서는 창조의 정수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관점을 갖고 세상을 항해한다.”

국악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니콜라스 갈라닌의 이 말을 명심하고 진지하게 작업할 때 국악의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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