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보다 소통…KIA를 춤추게 한 ‘호랑이 형님’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를 다시 페넌트레이스 정상으로 올려놓은 이범호(43) 감독은 “수훈 선수를 꼽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곳 없다는 듯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말하겠다”며 대답을 미뤘다. 선수들 모두를 동생처럼 아끼는 감독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올 시즌 내내 선두를 달려온 KIA가 지난 17일 프로야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0-2로 졌지만, 2위 삼성 라이온즈가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4-8로 패하면서 매직넘버 1이 소멸됐다.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쥔 KIA 선수단은 바로 서울에 마련된 행사장으로 이동해 샴페인을 뿌리며 기쁨을 나눴다.
이로써 KIA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해 통산 7번째 페넌트레이스 정상 등극의 기쁨을 맛봤다. 1982년 창단 후 단일리그 체제를 기준으로 1991·1993·1996·1997·2009·2017년에 이어 올해까지 7차례나 우승했다. KIA는 올 시즌 성적은 물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홈 관중 117만7249명을 기록하면서 종전 최다인 2017년의 102만4830명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또, 26차례나 홈구장 만원관중 기록을 세우면서 2009년의 21회 매진 기록을 갈아치웠다.
KIA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올 시즌 새로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1981년생으로 10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가장 어린 이 감독은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잘 이끌었다. 친근한 선배 같은 이 감독의 지도력 덕분에 KIA는 올 시즌 내내 신구의 조화를 이뤘다.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과 2011년 삼성 류중일 감독에 이어 데뷔하자마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한 이범호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은 KIA 선수 시절이던 2017년 처음으로 해봤다. 감독으로서 이렇게 빨리 우승을 차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내가 절대 초보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승리만을 위해서 달렸다”고 했다.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 이 감독은 KIA 타격코치로 있던 지난 2월 갑자기 감독을 맡았다. 전임 김종국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낙마하면서 갑자기 선수단을 이끌게 됐다.
야구팬들의 우려가 컸다. 2019년 은퇴 후 일본과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2021년부터 KIA의 2군 총괄 및 타격코치로 일했지만, 지도자로서 쌓은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최초의 1980년대생 감독이라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우려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초보 감독’ 이범호는 이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입증했다. 동생 같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면서 감독과 선수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메시지를 주고 싶을 때는 선수 교체와 2군행 지시 등의 과감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KIA 투수 양현종은 “초보 감독님이셔서 그런지 위기에선 선수들이 당황할 정도로 표정이 바뀌시더라. 그럴 때일수록 감독님을 돕기 위해 선수들끼리 뭉쳤다”고 했다.
이 감독의 맏형 리더십을 앞세운 KIA는 올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4월 9일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선 뒤 상위권을 질주했다. 6월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2위로 내려왔지만, 다시 1위를 탈환한 뒤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특히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 삼성 등 턱밑까지 따라온 2위 팀과의 맞대결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김도영이 타선을 이끌었고, 최형우와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 등이 뒤를 받쳤다.
이제 이 감독의 시선은 한국시리즈로 향한다. KIA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역대 11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이 감독은 “선수들을 믿는다. 여기까지 온 만큼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한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할 수 있을지 선수들과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인천=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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