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 삐삐가? 레바논서 ‘테러용 폭탄’ 된 무선 호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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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다투고 있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지닌 무선 호출기(삐삐) 수천대가 동시에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 헤즈볼라가 조직에 "도·감청이 우려되니 휴대폰을 쓰지 말라"고 공지했는데 이스라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를 역이용, 삐삐를 폭탄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레바논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헤즈볼라가 수입한 삐삐 5000대에 모사드가 폭발물을 심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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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다투고 있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지닌 무선 호출기(삐삐) 수천대가 동시에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 헤즈볼라가 조직에 “도·감청이 우려되니 휴대폰을 쓰지 말라”고 공지했는데 이스라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를 역이용, 삐삐를 폭탄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 보건 당국에 따르면 17일(현지 시각) 오후 3시30분쯤 다수의 삐삐가 이 나라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최소 9명이 사망하고 3000명 이상이 다쳤다. 이 사건 피해자에는 헤즈볼라 조직원 외에도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 대사가 포함됐다. 이웃 국가인 시리아에서도 최소 14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레바논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헤즈볼라가 수입한 삐삐 5000대에 모사드가 폭발물을 심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그동안 조직원들에게 삐삐 사용을 공식적으로 장려해왔다. 휴대폰에는 카메라와 마이크, 위성 항법 장치(GPS)가 달려 있어 스파이웨어가 설치되면 원격 도·감청, 위치 추적 수단으로 악용되기 쉽다. 실제로 이스라엘 보안 기업 NSO가 개발해 세계 각국에 수출한 휴대폰 도·감청용 스파이웨어 ‘페가수스’는 민간인 불법 사찰에 악용돼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반면 삐삐는 카메라와 마이크, GPS가 모두 없는 데다 전파 음영 지역에서도 통신이 비교적 원활해 헤즈볼라에서 사용이 권장됐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등 서방 국가 당국자들도 이 사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헤즈볼라가 주문해 받은 삐삐들의 배터리 옆에 28~56g 분량의 폭발물과 원격 기폭 장치가 달려 있었다. 해당 삐삐들에는 폭발 직전 신호음을 내 사용자가 집어 들도록 만드는 프로그램도 설치돼 있었다. 삐삐들에는 대만 기업인 ‘골드 아폴로’ 상표가 붙어 있었지만 이 회사는 “우리와 상표권 계약을 맺은 유럽 회사가 생산한 것”이라고 연루설을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해당 유럽 회사의 공급망에 구멍이 뚫려 유통 과정에서 삐삐들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모사드 등은 과거에도 암살 수단으로 폭발물을 심은 통신 기기를 이용해왔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계열 과격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하자 모사드는 프랑스 주재 PLO 대표 마흐무드 함샤리의 집 전화기를 폭발물이 든 것으로 교체, 그를 살해했다. 1996년에는 하마스 폭발물 전문가 야히아 아이야시가 이스라엘의 국내 정보기관 ‘신 베트’가 폭발물 50g가량을 심은 휴대폰을 쓰다 폭사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모사드가 국제법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삐삐 수천대를 터뜨리는 전례 없는 공격 방식은 분쟁과 관련 없는 민간인까지 해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 사건 사망자에는 어린이가 포함됐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에서 분석관으로 일했던 히브리대 소속 국제법 전문가 탐 밀란은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에 “삐삐 공격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이다. (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모사드는) 그 공격에 누가, 얼마나 다칠지 알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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