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인텔 '유럽·IDM' 버렸다…반도체 공급망 또다시 격변

심서현 2024. 9. 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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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할수록 미국, 안 될수록 x86 " 위기의 반도체 공룡 인텔이 낸 구조조정 안의 핵심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는 회사를 떼어내고, 미국 밖 대형 투자는 중단하며, 주력인 x86 중앙처리장치(CPU) 위주로 제품군을 정리한다. 시가총액이 장부 가치 아래로 내려간 인텔이 벼랑 끝에서 낸 자구책이다.

미국 빅테크 아마존과 미 국방부는 반도체 제조 물량을 줘 인텔을 돕기로 했다. 인텔이 독일·폴란드·말레이시아의 수십조원 규모 투자를 멈추면서, ‘유럽산 반도체’와 ‘동남아 첨단 패키징’의 꿈은 꺾일 위기다. 인텔 개편으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또 한 번 요동치게 됐다.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이제는 놓아준다, 파운드리


지난 16일(현지시간)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들에게 보낸 구조조정 방안을 공개했다. 가장 먼저는 ‘남의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인텔 파운드리의 분사다.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가 외부 고객에게 인텔의 다른 사업과의 더 명확한 독립성을 제공”하며 “독립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40년 만에 인텔의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원래 메모리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은 지난 1985년 메모리에서 CPU로 주력 사업을 옮기는 대전환을 해 CPU의 제왕이 됐다.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 인텔이 제조(파운드리)를 떼어내는 것을 이에 비견한 것이다.

인텔은 지난 2021년 초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지만, 반도체 회사들은 설계 경쟁사인 인텔의 파운드리에 선뜻 자사 칩 제조를 맡기지 않았다. 게다가 인텔은 문화가 다른 설계와 제조가 한 몸에 있고 몸집도 커, 변화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년간 매년 250억 달러(약 33조원)를 투자하고도 파운드리가 지지부진한 배경이다. 인텔 파운드리 분사로, IDM으로 파운드리 사업까지 크게 운영하는 회사는 사실상 삼성전자만 남게 됐다.


믿을 건 미국이다, 고마운 아마존·국방부


이날 인텔은 아마존으로부터 대형 계약을 따냈다고 밝혔다. 인텔과 아마존은 수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 맞춤형 반도체 설계에 공동 투자하고, 인텔의 18A(1.8나노미터) 공정에서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AWS)용 인공지능(AI) 칩을 생산하며, 인텔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의 서버용 CPU ‘제온(Xeon) 6’도 AWS에 공급하기로 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세계 1, 2위인 TSMC나 삼성전자보다도 먼저 첨단 1나노급 공정에 진입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정작 쓰겠다는 고객은 찾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큰 손 아마존이 인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캠퍼스에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인텔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30억 달러(약 4조원)어치 군사용 반도체 공급 계약도 수주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사용할 최첨단 반도체의 신뢰할 수 있는 제조처를 늘리기 위한 ‘시큐어 엔클레이브(Secure Enclav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텔이 미국 상무부로부터 받기로 한 85억 달러 보조금과는 별개라고 회사는 밝혔다. 이날 인텔은 ’설계와 제조 전반에 걸친 역량은 우리 강점의 원천’이라며 파운드리 매각설을 일축했는데, ‘첨단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기업’으로 미국 국방·보안용 반도체 제조를 도맡겠다는 포부다.

EU는 제낀다, 독일·폴란드 팹 건설 중단


반면, 유럽은 순위에서 밀렸다.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의 자본 효율성을 높이겠다”라며 “폴란드와 독일 프로젝트는 2년간 중단하고, 말레이시아 첨단 패키징 공장은 시점을 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인텔은 지난해 독일에 300억 유로(약 44조원), 폴란드에 42억 유로(6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제조(독일) 및 패키징·테스트(폴란드) 기지를 건설한다고 밝혔었다. 유럽연합(EU)의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투자금의 3분의 1은 독일과 폴란드 정부가 댈 참이었다. 그러나 내 코가 석 자인 인텔의 건설 중단 선언으로 ‘2030년 EU가 세계 반도체 시장 20%를 차지하겠다’라는 EU의 꿈은 커다란 암초를 만나게 됐다. 이로써 인텔이 진행 중이던 대형 건설 프로젝트 중, 미국과 이스라엘, 3나노 반도체 양산을 갓 시작한 아일랜드 외 해외 건설은 모두 중단됐다.

김영옥 기자


잡다한 통신·자동차 미루고, AI·CPU 집중


제품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겔싱어 CEO는 “고객에 제공하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간소화하면서, AI 전략을 추진하며 강력한 x86 제품군에 다시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그간 인텔은 주력인 CPU뿐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 자동차용, 통신용, 엣지(기기 자체에서 AI 구동)용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CPU 리더십을 먼저 지키겠다는 결정이다. 지난 5월 깜짝 인사로 수장이 바뀐 삼성전자 반도체(DS) 역시, 주력인 D램 메모리 반도체 리더십의 회복을 중심으로 사내 조직 개편을 준비 중이며, 연말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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