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음악가, 한국 입시 앞에서는 무너졌다

이순영 2024. 9. 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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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단일한 기준이 강한 한국, 인재 양성에 적합한 환경일까

[이순영 기자]

▲ 월드 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한국의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입시를 앞둔 수험생으로 참가해 혹평을 받다.
ⓒ 레이첸
한국의 한 유튜브 채널에서 오는 19일 서울 롯데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Ray Chen 1989~ )을 섭외해 몰래 카메라를 찍었다.

레이 첸은 2017년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의 아시안 30인으로 선정, 에후디 메뉴인 콩쿠르 우승,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이다.

2021년 미국 미시간에서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오케스트라 공연이 처음으로 재개되던 날 레이 첸은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협연을 했다. 연주가 끝났는데도 관중들이 계속해서 기립하고 박수를 쳐서 두 번이나 무대에 소환되어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가 세 번째 나왔을 때는 관객의 호응에 보답하듯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앙코르 곡으로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가 단원들도 전원 기립해서 박수를 칠 정도로 레이 첸은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거장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한국 음악대학을 준비하는 입시생으로 위장을 하고 실험에 참가한 것이다.
▲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인 레이 첸 팬데믹 종료 후 첫 공연으로 미국 미시간에서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레이 첸
ⓒ 이순영
실험의 내용은 현직 대학 교수이자 바이올리니스트 3명을 심사석에 앉히고 대학의 입시평가회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속인 뒤 블라인드 형식으로 레이 첸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에 레이 첸은 한국 입시생들과 함께 커튼 뒤에서 연주를 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월드 클래스 수준인 그가 본인의 실력 그대로 연주를 하면 실험 대상자들의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제작진이 준비한 바이올린을 가지고 대충 연주를 했다. 그리고 난 뒤 튜닝에 문제가 있었다며 심사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한 번 연주 기회를 요청했다. 그렇게 다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레이 첸은 자신의 악기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연주를 중간에 중단시키고 평가에 들어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혹평이 이어졌다.
▲ 몰래 카메라 실험에 참가 중인 레이 첸 한국의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몰래 카메라 실험에 참가한 레이 첸
ⓒ 또모TOWMOO
레이 첸이 자신감에 넘쳐 연주하는 것이 실전에서는 교수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으니 긴장감 있게 곡을 연주하라는 평부터 시작해 너무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 본 곡의 느낌 대로 들리지 않으니 이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들어야 했다. 사회에 나가서는 개성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입시 때는 많은 선생님들을 충족시킬 만한 연주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적인 예술가도 한국 입시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그리고 레이 첸의 마지막 연주는 그의 실력을 십분 발휘한 것이었다. 제작진은 그가 연주를 하는 중에 커튼을 열고 심사위원들에게 그를 공개했다. 그러자 심사위원들은 당황해했다. 누구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답이었다. 물론 입시에서 주어진 규칙에 순응하며 정석 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학생들을 뽑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입시 체제가 보편적이고도 단일화된 기준이 강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이해하고 넘기기엔 문제가 많이 보인다.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월드 클래스의 예술가가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입시가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수험생의 실력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실력을 갖춘 인재를 제대로 가려낼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한국의 입시 현장을 직접 경험한 레이 첸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준 심사위원들을 향해 이 모든 의견들을 다 중요하고 맞는 말이라고 존중을 하면서도 학생과 전문가의 차이점에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전문가는 모든 규칙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며 이를 어떻게 응용하고 자신에게 맞게 표현하느냐, 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도록 본인 스스로를 허락해주는 것이라고 소신 있게 설명했다.

예술가는 평가의 기준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게 되며 곡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 해석, 개성을 마음껏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조차 전문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연주하면 떨어진다'는 조언을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입시 예술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천재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회는 실패한 사회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하는 것은 독재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렇다면 좋은 사회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개개인의 개성을 장려하고 육성하여 개개인이 자신의 본성을 최고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사회다.

한국의 대학이 학생들의 개성은 물론 그들의 천재적인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를 알아보고 키워나가도록 돕는 방향 또한 모색한다면 우리 사회 또한 세계적인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는 환경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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