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한국시리즈행, 타이거즈 불패 신화는 계속될까

이준목 2024. 9. 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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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팬들에게 정규리그 1위 소감 밝히는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
ⓒ 연합뉴스
KIA 타이거즈가 구단 역사상 12번째 한국시리즈 진출 티켓을 확정했다. KIA는 정규리그 2위 삼성 라이온즈가 지난 9월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에 4-8로 패하면서 모든 매직넘버를 지우고 남은 7경기에 관계없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게 됐다. KIA가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은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17시즌 이후 7년 만이다.

KIA는 KBO 리그 통산 최다 우승 구단이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모든 세대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번 이상 경험해 본 구단은 KIA와 두산 베어스 단 두 팀뿐이다.

특히 전신인 해태 시절에는 통산 9번의 우승, 프로야구 최초의 4년 연속 우승(1986-1989) 등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한국 야구 사상 최강의 왕조를 구축했다. 당시 상대적으로 다른 구단들보다 부족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끈끈한 팀워크와 걸출한 슈퍼스타들을 배출해 내며 어떻게든 경기를 승리로 끌어내는 저력은, 다른 팀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위압감을 줬다.

다만 KIA 시대로 넘어온 이후로는 다소 주춤했다. 2009년과 2017년에 한 번씩 우승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각각 12년, 8년 만의 우승으로 간격이 길었다. 마지막 우승 이후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에 복귀하는 데도 7년이 걸렸다. 2000년대 이후 현대-SK-삼성-두산 등이 번갈아 가며 새로운 왕조의 계보를 이어갈 동안 KIA는 해태 시절만큼의 꾸준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더구나 KIA는 올 시즌을 앞두고 큰 악재가 있었다. 지난 2월 김종국 전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사령탑에서 낙마하면서 KIA는 새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 출국 직전에 감독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감독의 비중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야구의 특성을 감안할 때 KIA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타격이었다.

KIA는 고심 끝에 구단 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이범호 코치를 예상보다 빨리 사령탑에 승격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80년대생(81년생) 감독이기도 했다.

이범호 감독은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게 되어 자신만의 야구 철학을 펼칠 만한 시간 여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팀 분위기를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이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바탕으로 부임 당시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는 약속을 실천하며 수많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끌어냈다.

KIA는 지난 시즌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못 했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KIA를 우승 후보로 꼽을 만큼 전력에서는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몇 년간의 들쭉날쭉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고참 라인인 양현종, 최형우, 나성범에서부터 박찬호, 김도영, 이의리, 정해영, 윤영철 등 중간 세대와 유망주 라인까지 고른 신구 조화를 구축하며 2017년 이후 최고의 황금 세대라는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KIA는 강력했다. 개막 4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한 KIA는 4월 9일에 올시즌 단독 첫 선두에 오르며 꾸준히 상위권을 질주했다. 6월 초 디펜딩 챔피언 LG 트윈스의 상승세에 밀려 잠시 1위를 내주기도 했지만 불과 5일 만에 다시 선두를 탈환했다. 이후 KIA는 경쟁팀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독주 체제를 구축하며 시즌 끝까지 1위를 지켜냈다. 고비마다 상위권 경쟁팀이었던 2위 삼성(10승43패), 3위 LG(13승3패) 등 강팀들의 맞대결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인 게 돋보였다.

물론 과정이 마냥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KIA는 시즌 내내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속출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투수진에서 이의리, 윌 크로우, 윤영철, 제임스 네일까지 선발 자원 4명이 차례로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장기간 이탈하거나 시즌을 마감하는 위기 상황이 거듭됐다. 타선에서도 4번타자였던 나성범이 개막 한 달간 부상으로 결장해야 했다. 다른 팀 같았으면 시즌을 망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비였다.

초보 사령탑인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도 여름까지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순위는 꾸준히 높았지만 약팀에 어이없는 스윕패를 당하거나 두산전 30실점 대참사(7월31일)처럼, 종종 1위팀답지 않은 졸전이 속출할 때마다 경험 부족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KIA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범호 감독은 실수를 인정하고 고비마다 유연한 대처와 선수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팀이 장기 부진에 빠지는 것을 막아내며 다시 성적을 반등시켰다. 또한 36세의 나이에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10승-160이닝을 달성한 양현종, 41세의 나이에 20홈런과 100타점(22홈런 108타점)을 넘긴 최형우 등 베테랑들의 투혼은 큰 버팀목이 됐다.

특히 잠재력이 폭발한 김도영은 대선배 이종범을 연상시키는 타이거즈 출신 '호타준족' 의 계보를 잇는 슈퍼스타였다. 데뷔 3년 차 만에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100득점(타율 .344 37홈런 39도루 105타점 134득점) 등 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들을 써내려 간 김도영은, 뛰어난 성적만큼이나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며 프로야구의 새로운 '아이돌'로 등극했다.

정규시즌 우승은 확정했지만 KIA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화두는 선수들의 기록 도전이다. 시즌 MVP가 유력한 김도영은 국내 선수로는 최초의 40홈런-40도루 기록에 이제 홈런 3개, 도루 1개만을 남겨놓고 있다.

양현종은 166.1이닝을 소화하며 남은 등판에서 3.2이닝만 채우면 10년 연속 170이닝 기록을 달성한다. 마무리 정해영은 현재 30세이브로 2위 오승환(삼성, 27세이브)에 3개 차이로 앞서 있어 임창용 이후 26년만의 타이거즈 출신 구원왕이 유력하다. KIA가 현재 7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이제 선수들의 개인 기록을 적극 지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또한 KIA가 프로야구 역사에서 최다우승과 더불어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기록이 바로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다. KIA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통산 11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시리즈 전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승률 100%를 달성한 바 있다. 이범호 감독은 KBO리그 80년대생 감독으로서 첫 우승이자, 타이거즈 최초로 초보 감독의 통합 우승 기록까지 노리고 있다. V12를 향한 '뉴 타이거즈'의 폭풍 질주가 남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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