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 트럼프 노렸다…자택 인근 골프장, 총들고 12시간 잠복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노린 두번째 암살 시도의 무대는 골프장이었다. 용의자는 선거 기간에도 트럼프가 플로리다 자택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골프장 내부가 보이는 철장에 저격용 총기를 설치하고 암살하려 했다.
지난 7월 트럼프에 대한 암살 미수 때 범행을 막지 못한 비밀경호국은 이번에도 허점을 보였다. 범인이 12시간 동안 도난 차량의 번호판을 부착한 채 트럼프의 저격을 위해 한 곳에 머물렀지만, 트럼프가 직전 홀에 갈 때까지도 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6번홀 그린 뒤 총기 든 남자”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1시 31분, 트럼프의 자택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 6번홀 그린 주변에서 4~5발의 총격이 발생했다.
트럼프에 앞서 전방 상황을 확인하던 비밀경호국 소속 요원이 골프장 철장에 거치된 총구를 발견하고 즉각 발사한 총탄이었다. 당시 5번홀에서 골프를 치고 있던 트럼프와의 직선거리는 300여m에 불과했다.
총격을 받은 범인은 트럼프 암살 계획을 포기하고 총기와 소지품을 버리고 범행현장 주변에 세워둔 자신의 검은색 닛산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다. 범인은 I-95 고속도로로 진입해 도주를 시도했지만, 오후 2시 14분께 골프장에서 61km 떨어진 지점에서 체포됐다.
트럼프를 노린 범인은 하와이 출신으로 주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건설업을 해왔던 58세 남성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다. 라우스가 체포 이후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범행 현장엔 소총과 중계용 ‘고프로’
범행 현장에선 옛 소련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SKS 계열 소총과 인터넷 생중계가 가능한 촬영장비 ‘고프로’가 발견됐다. 실탄이 장전된 소총엔 저격용 망원 조준경이 장착돼 있었다. 범행 장면을 인터넷으로 중계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사당국은 라우스의 소셜 미디어 계정과 그가 소지하고 있던 전자 장비 등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범행 동기와 추가 공모자 등을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FBI(미 연방수사국) 측은 16일(현지시간) “용의자의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 계정, 온라인 활동 등과 관련해 해당 회사들에 요청을 보냈고 답신을 받는 중”이라고 밝혔다. FBI는 루이스의 기존 거주지에 대한 압수 수색도 추진하고 있으며, 그의 가족 및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면담을 진행하기 위해 해당 지역 지부 요원들을 파견했다.
수사당국은 당초 범행에 동원된 소총이 AK-47 계열이라고 밝혔지만, 16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공소장엔 ‘SKS 계열 소총’으로 명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SKS 소총은 현재 미국의 총기 거래 사이트에서 중고가 기준 500~800달러(약 66만~106만원)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범인이 가지고 있던 총기엔 일련번호가 훼손돼 있었다. 또 범행에 사용한 차량의 번호판은 도난 신고된 2012년형 포드 트럭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사당국이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결과 범인은 암살을 계획했던 당일 오전 1시 51분부터 12시간 동안 범행 현장에서 대기하며 트럼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 후보의 동선 상에 도난 차량이 12시간 동안 머물렀음에도 비밀경호국이 이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17일 로널드 로 비밀경호국 국장 대행은 “트럼프의 골프 라운딩은 공지됐던 일정이 아니었다”면서도 “사전에 골프장 주변을 수색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이는 공식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일정까지 사전 대처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비밀경호국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나는 의회가 비밀경호국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는 16일 라우스를 기소하면서 우선 유죄를 선고 받은 중죄인이 소지할 수 없는 총기를 소지한 혐의와 일련번호를 지운 총기를 소지한 혐의 등 2건을 적용했다. 모두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죄목이다.
CNN은 “라우스를 구금하고 수사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 2건의 혐의로 우선 기소한 것”이라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암살 미수 혐의 등을 추가로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대선 50일…트럼프, ‘해리스 책임론’ 피력
트럼프는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엄지를 들어올린 사진을 공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세상에는 우리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자금 모금을 독려했다.
특히 지난 7월 총기 테러 이후 “싸우자(fight)”고 외치며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한 뒤 오히려 ‘통합’을 내세웠던 것과 달리 이번엔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책임론을 부각하고 있다.
트럼프는 16일 보도된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암살 시도범은) 바이든과 해리스의 레토릭(트럼프에 대한 표현)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며 “그들의 레토릭이 내가 총에 맞도록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17일 온라인 대담에서도 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자신을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프레임 때문에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13일 발생한 트럼프에 대한 첫 번째 총기 테러 1주일 전인 같은 달 8일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놓아야 할 때(It‘s time to put Trump in the bullseye)”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실수”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이런 비난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재선시 행정부 합류 가능성이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엑스(옛 트위터)에 “아무도 바이든과 카멀라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고 올린 데 대해서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런 입장 표명이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다. 머스크는 논란이 일자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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