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81년생 이범호, 역사적 V12 도전
프로야구 명문 구단 KIA 타이거즈를 다시 페넌트레이스 정상으로 올려놓은 이범호(43) 감독은 수훈선수를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망설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곳 없다는 표정으로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말하겠다”며 대답을 미뤘다. 선수들 모두가 동생처럼 느껴지는 맏형의 너른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내내 선두를 달려온 KIA가 지난 17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0-2로 졌지만, 2위 삼성 라이온즈가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시 4-8로 패하면서 마지막 남은 우승 매직넘버 1이 소멸됐다.
이로써 KIA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해 통산 7번째 페넌트레이스 정상 등극이라는 기쁨을 맛봤다. 1982년 창단 후 단일리그 체제를 기준으로 1991·1993·1996·1997·2009·2017년 그리고 올해까지 차례로 금자탑을 쌓았다.
이번 KIA의 정규리그 우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올 시즌 새로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이다. 1981년생으로 10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가장 어린 이 감독은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잘 다독였다는 평가를 듣는다. 친근한 선배 같은 이 감독의 지도력 아래 KIA 벤치는 올 시즌 내내 신구 조화를 효과적으로 이뤘다.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과 2011년 삼성 류중일 감독 다음으로 사령탑으로 데뷔하자마자 페넌트레이스를 제패한 이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KIA 선수 시절이던 2017년 때 처음으로 해봤다. 이렇게 빨리 감독으로서 다시 경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감회가 남다르다”면서 “내가 절대 초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않나. 그저 승리만을 위해 달려왔다”고 했다.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 이 감독은 KIA 타격코치로 있던 지난 2월 갑자기 지휘봉을 잡았다. 전임 김종국 감독이 금품수수 혐의로 낙마하면서 급작스레 선수단을 이끌게 됐다.
걱정이 컸다. 2019년 은퇴 후 일본과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2021년부터 KIA의 2군 총괄 및 타격코치로 일했지만, 지도자로서 쌓은 경험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최초의 1980년대생 감독이라는 점에서 시행착오가 많을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초보 감독’ 이범호는 이러한 기우를 보기 좋게 비웃었다. 동생 같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하며 감독과 선수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메시지를 주고 싶을 때는 선수 교체와 2군행 지시 등 사령탑으로서 낼 수 있는 카드를 과감히 꺼내들었다. KIA 마운드를 책임지는 양현종은 “초보 감독님이신 만큼 위기에선 선수들이 당황할 정도로 표정이 바뀌시더라. 그럴 때일수록 감독님을 돕기 위해 우리끼리 뭉쳤다”고 했다.
이 감독의 맏형 리더십을 앞세운 KIA는 올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4월 9일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선 뒤 계속해 단독선두를 달렸다. 6월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잠시 2위로 내려왔지만, 다시 1위를 탈환한 뒤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 과정에서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김도영이 타선을 이끌었고, 최형우와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 등이 결정적인 주춧돌을 놓았다.
이제 이 감독의 시선은 한국시리즈로 향한다. KIA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역대 11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이 감독은 “우승 확률 100%가 지닌 부담은 없다.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 여기까지 온 만큼 한국시리즈 우승은 이루지 못한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은 기간 어떻게 하면 우승할 수 있을지 선수들과 고민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천=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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