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메타 '미니 원전' 열풍인데…'탈원전'에 12년 멈춘 韓

최현주 2024. 9.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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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들은 인공지능(AI)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해 향후 원자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최근 미국 출장에서 엔비디아‧오픈AI‧TSMC‧MS(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인텔 같은 글로벌 AI 업체의 수장들을 만난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그룹 주요 경영행사인 ‘이천포럼 2024’에서 이렇게 말했다.

AI 산업이 커지면서 전력 소비량이 확 늘자 빅테크들이 원자력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필요한 전력은 급증하는데 환경 문제를 감안하면 화석에너지에만 기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연구소에서 연구소 직원들이 소듐냉각재 시설의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테라파워


AI 개발이나 운용에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우선 AI 산업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려면 일반 데이터 센터의 6배 수준의 전력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서버(컴퓨터)가 수천 대 이상 모여 있는 시설이다. 24시간 가동되며 실내 냉각‧습도 조절이 중요해 쉼 없이 전기 공급이 필요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가상자산·AI 관련 전력 소비량이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엔 1050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본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구글에서 검색할 때 필요한 전력은 평균 0.3와트시(Wh)지만, 생성AI인 챗GPT에 검색을 하면 10배 수준인 2.9Wh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에 기댈 수도 없다. 알파벳‧애플‧메타‧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까지 ‘넷제로’(탄소중립, 실질 탄소배출 0인 상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해서다.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떠오르는 가운데, 원자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모두 크다. 로버트 에클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최근 포브스 기고문을 통해 “재생에너지는 단독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원자력이 탈탄소 기저부하 전력을 제공하고 필요한 부지 면적이 작으며 발전소 수명이 두 배 이상 길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교수에 따르면 에너지원에 따른 설비 가동률은 원자력이 92%, 천연가스 55%, 석탄 54%, 수력 37%, 풍력 37%, 태양광 27%다. 미국원자력협회(NEI)는 원자력이 더 작은 면적으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보완한다고 평가했다. 원자력에 비해 태양광은 31배, 풍력은 173배 더 큰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발전소 수명도 원자력은 40~60년이지만, 풍력은 20년, 태양광은 30년이다.

특히 빅테크들은 소형모듈원자로(SMR)에 주목하고 있다. 전기 출력이 대형 원전(1000MW)보다 작은 300메가와트(MW) 이하로 작은 미니 원전이다. 필요한 전력을 얻을 만큼의 크기로 제작할 수 있어 공간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반경도 대형원전(30㎞)의 100분의 1인 300m 수준이다. 냉각수로 물을 사용하지 않아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건설 기간도 대형 원전(1년)보다 짧은 3~4년(1000MW 기준)이면 된다.

박경민 기자

뉴스위크‧로이터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SMR 개발사인 오클로에 투자하며 2027년 가동을 목표로 SMR 개발에 나섰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이 오클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헬리온 에너지와 2028년부터 핵융합 발전을 통해 매년 50MW 이상의 전력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 3월 펜실베니아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원자력 공급을 위해 6억5000만달러(약 8720억원)를 투자했다.

MS도 풍력과 태양열을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버지니아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원자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지난해 5월 체결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는 아예 SMR 기업인 테라파워를 만들었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40억달러(약 5조3680억원) 규모의 SMR 건설 공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중국도 상업용 SMR 링룽 1호를 완공하고 2026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SMR 가동을 목표로 올해 초 연합체인 ‘유럽 SMR 산업동맹’을 출범시켰다. 미국에선 뉴스케일이 미국 최초로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설계 인증을 받으면서 웨스팅하우스, 카이로스파워 등 여러 기업이 SMR을 개발에 나섰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2012년 SMR 표준설계 인가를 받았지만, 그간 발전이 더뎠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脫)원전 기조로 바뀌었고, 대형 원전에 적용하는 규제가 SMR에 적용되는 등 관련 제도도 정비되지 않은 영향이다. 예컨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반경이 SMR은 300m지만, 해당 부지 반경 20~30㎞ 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동의를 구해야 하고 대피소와 대피로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한국형 SMR 개발 필요성을 인지하고 내년까지 세부 규제를 마련해 2028년 한국형 i-SMR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2028년 표준설계 인가를 거쳐 2035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방문에서도 양국은 SMR 등 차세대 원자력 연구개발에 관한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원전 생태계가 국내외에서 되살아나면서 국내 업체들도 SMR 시장 대비에 서두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주기기 생산을 위해 전용 공장을 설립했고, 지난해 초엔 DL이앤씨가 엑스에너지 지분투자 및 핵심 기자재 공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SK도 일찌감치 에너지 사업을 점찍고 SMR 사업 등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2022년 SK㈜와 SK이노베이션은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337억원)를 투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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