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아편"이라던 中 돌변…손오공 열풍에 "전통문화의 봄"
손오공에 중국이 열광하고 있다. 자국 게임 ‘검은신화 : 오공(오공)’의 흥행 때문이다. 뛰어난 그래픽과 게임성 등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거두고 있는 이 작품에 중국 젊은이는 물론 중국 정부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게임 시장도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의 전장(戰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공은 중국 고전 서유기를 모티프로 한 비디오 게임(콘솔)용 액션 RPG 게임이다. 서유기 속 주인공 손오공이 여의봉과 분신술 등으로 강적들을 물리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플레이스테이션5(PS5)와 PC 게임 플랫폼 스팀으로 지난달 20일 출시됐다. 출시 사흘만에 1000만부, 2주만에 1800만부의 판매 기록을 세우고 61억위안(약 1조2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이번달 내로 2000만부, 올해 안으로 3000만부 판매를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공은 중국이 처음 만든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이다. 트리플 A급 게임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투입해 만든 대작 게임을 말한다. 중국 플랫폼 기업 텐센트 출신 개발자들이 만든 스타트업인 게임사이언스가 6년 동안 750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텐센트가 지분 투자 등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을 주도해 오던 중국 게임업계는 오공의 흥행으로 제작 난이도가 높은 콘솔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드러냈다. 미국 CNBC 방송은 “오공은 닌텐도나 유비소프트, EA 등에서 만드는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을 중국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자국 게임의 흥행에 중국 게이머들도 열광 중이다. 현지 매체에선 오공의 인기로 인해 오프라인 게임 매장의 PS5 기기가 동이나고, 컴퓨터 사양을 업그레이드하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며 지난 2021년 부터 관련 산업을 강하게 규제했던 중국 당국도 태도가 달라졌다. 오공의 흥행 이후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공은) 중국 고전문학의 걸작을 기반으로 중국 문화의 매력을 표현했다”고 언급했다. 관영 언론도 오공에 대해 “전통문화의 붐”, “게임 산업의 돌파구” 등의 표현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공의 흥행을 국내 민간 경제 회복과 해외 중국 소프트파워 확대의 계기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러한 중국의 ‘게임 굴기’가 미국의 견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호주 비영리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오공을 앞세운 중국의 게임 산업 강화는 미·중 기술 전쟁(tech-war)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리플 A급 게임의 고품질 그래픽을 구현하려면 미·중 갈등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첨단 반도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아직 중국은 게임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를 자체 제조할 능력이 없다.
더컨버세이션은 “게임 산업이 발달하면 고사양 칩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중국의 게임은 단순히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대항해 중국의 칩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 ‘하드파워’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업계 1위인 미국의 엔비디아가 또 다시 미국 정부의 규제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엔비디아는 오공 게임 출시 당시 “이 게임에는 엔비디아 RTX 40 GPU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풀 레이 트레이싱, DLSS 3 등 최신 그래픽 기술이 적용됐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2022년 8월부터 엔비디아가 최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나아가 엔비디아가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든 다운그레이드 AI 칩 'B20'의 대중 수출을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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