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 리스크" 16세 쌍둥이가 본 '태재대 실험' 1년

서지원 2024. 9.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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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교한 태재대에 재학 중인 전다윗, 전다희 학생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로컬스티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전민규 기자

" 태재대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리스크(risk)였어요. 한국이나 미국 대학 대신에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거죠. 성공은 리스크에서 시작하니까요. "
전다희 양은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태재대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판 미네르바대학’으로 불리는 태재대 1기 재학생이다.

태재대는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형 미래 대학을 목표로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를 다니며 수업을 듣는 파격적인 혜택과 정년 없이 전임교원을 채용하는 등 실험적인 행보로 설립 단계부터 이목을 끌었다.


“방학이면 까먹는 공부 아쉬웠다” 태재대 선택한 쌍둥이


한국의 미네르바 대학 태재대의 전다윗,전다희 학생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로컬스티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전민규 기자
2008년생 이란성 쌍둥이 전다윗·전다희(16) 남매는 ‘최연소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 검정고시를 치렀다. 다희 양은 “한국인인데 한국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는 점, 교수님과 학생들이 개교하는 대학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다윗 군은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배운 내용은 방학이 되면 다 까먹더라”며 “받아들이고 외우는 게 공부일까,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응용하게 해주는 수업은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태재대에 왔다”고 했다. 그는 올 1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25회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AI 자율주행 부문 금메달, 로봇 부문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태재대의 실험 “인재 없으면 정원 안 채우겠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태재대학교 대학본부에서 1기 신입생 입학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태재대는 1기 지원자 410명(전형별 중복 지원 포함) 중 32명을 선발했다. 올해 선발한 2기에는 329명이 원서를 냈고, 42명이 합격했다. 정원은 100명이지만 “인재가 없으면 굳이 다 채우지 않겠다”는 것이 이 대학의 방침이다. 수능 성적을 보지 않고 서류와 면접·토론을 통해 지원자의 가능성을 평가한다.

베트남·튀니지·이스라엘 등 학생들의 국적도 다양하고, 연세대 경영학과나 이화여대 국제학부에 다니다 온 학생도 있다. 태재대는 사이버대학으로 설립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일반대와 중복 등록이 가능하다.

재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수업은 온라인에서 듣는다. 강의실에 몇 시간씩 모였다가 각자 집으로 헤어지는 다른 대학들과는 반대인 셈이다. 다희 양은 “초반에는 ‘우리가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는 농담도 했지만, 혁신적인 대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크다”고 했다.


염재호 “학벌보단 능력 키울 것…AI로 수업 분석”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전다윗, 전다희 학생. 전민규 기자
태재대 교육 실험의 핵심은 ‘자기 주도 학습’이다. 다윗 군은 “수업에 필요한 배경지식과 질문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참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새벽까지 책이나 자료를 찾아본다”며 “태재대 수업의 특징은 학생이 수업 전에 예습하고, 수업 시간 내내 토론하는 거꾸로(flipped), 주도적(active) 학습”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을 꼽아달라고 하자 두 학생은 “UN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라거나 “사회적 이슈에 관해 단편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20명 이하의 소규모 수업에서 또다시 조를 짜기 때문에 끊임없는 의사소통과 협업은 필수라고 했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태재대학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염 총장은 지난달 개교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교수 발언이 수업의 20%를 넘지 않게 하겠다”며 “교수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재능을 끌어내고, 지식을 내재화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태재대는 모든 수업을 녹화해 인공지능(AI)이 분석, 의사소통에 관한 피드백을 할 계획이다. 교수들이 효과적인 교수법을 연수할 수 있도록 교원역량강화센터도 새로 만든다.


“우물 안 개구리 되지 않는 게 목표”


태재대 온라인 수업 예시 사진. 태재대 제공
전공의 벽을 없앤 것도 이 대학의 특징이다. 태재대는 인문사회와 비즈니스혁신, 자연과학과 데이터과학·인공지능(AI) 학부 중 원하는 강의를 골라 전공을 설계할 수 있다. 염 총장은 “학부만 졸업해도 전문가 대접을 받던 과거가 있었지만, 이제는 전문적인 수준의 교육은 대학원에서 하는 게 맞는다”며 “학부에서는 지식에 대한 근육, 기초 체력을 키워주는 융합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다희 양도 “태재가 나의 토대(base)가 되면 좋겠다”며 “AI와 생물학을 전공한 이후에 다른 대학이나 대학원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윗 군은 외국에서 수업을 듣는 ‘글로벌 로테이션’을 기대하면서 “중국이 특히 궁금하다. 여러 나라를 경험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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