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농성장이 명절 고향집, 여기에도 보름달이 뜹니다

박은영 2024. 9. 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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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 소식 140일-141일차] 천막농성장이 고향집인 생명들과 함께

[박은영 기자]

▲ 흰목물떼새의 모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흰목물떼새의 모습
ⓒ 임도훈
"물이 많이 빠졌네요!"

수자원공사가 예고없이 수문을 닫아 차올랐던 수위가 이내 이전 수위로 돌아왔다. 여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그 크기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깊은 물과 얕은 물이 골고루 어우러져 금강이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백로와 왜가리가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좀도요와 깝작도요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열심히 산책하는 모습이 웃음을 짓게 한다.

명절 전날에도 금강을 사랑하는 세종시민들은 금강이 내다보이는 참샘약수터 위 한솔정에서 망원경을 설치하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금강을 보여주겠노라며 모였다. 20여 명의 시민들이 오가며 우리가 보던 중대백로와 왜가리, 민물가마우지를 관찰하고 세종보 재가동이 왜 안되는지를 듣고 갔다. 금강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명절을 맞는 마음을 더 넉넉하게 했다.

가만히 여울을 바라보는 흰목물떼새의 뒷모습, 나는 백로의 가지런한 다리처럼 강에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때야 보이는 이런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예고없이 세종보 1번 수문 담수… 사전 예고조치로 시민 피해 없어야
 1번 수문을 닫은 세종보 모습
ⓒ 우인정
"물이 갑자기 차오르고 있어요."

지난 12일 밤, 갑자기 차오르는 수위에 천막농성 야간담당 하던 이가 전화해 다급한 목소리를 말했다. 수자원공사가 세종보 수문을 사전 예고 없이 닫아 천막농성장 주변으로 물이 차오른 것이다. 바닥보호공 주위로 물이 차오른 물은 13일 새벽 농성장 주변을 잠시 고립시켰다. 수자원공사는 20mm~30mm의 강우를 예상하고 정기점검 한다며 수문을 올렸는데 예상보다 많은 50mm의 비가 내리면서 금강의 수위가 더 빠르게 상승한 것이다. 자칫 수변에 있는 시민들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전예고 조치 등 시민안전을 위한 대비가 있었어야 했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아래 시민행동)은 지난 13일 성명을 발표하고 '자칫 수변에 있는 시민들에게 위험이 닥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보 자체가 강의 수위를 상승시키는 위험시설이다. 50mm 강우량에도 속수무책으로 불어나는 강물을 대책없이 바라보면서 어떻게 국민의 안전을 내맡길 수 있겠는가'며 규탄했다. (관련 기사 : "세종보 수문 '도둑 담수'... 천막농성장 잠길 뻔" https://omn.kr/2a6ke)

윤석열 정부의 정권 옹호를 위해 '보 정상화'를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물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세종보 재가동 추진이 아니라 창궐한 녹조를 해결하기 위해 4대강 보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 권력의 아집에 온 국민과 온 생명들이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독선을 버리고 후퇴한 물정책을 정상화 하라.

천막농성장이 명절 고향집… 북적북적한 농성장 풍경
 정지산부터 이어지는 데크길 공사 중인 모습
ⓒ 임도훈
백제문화제 때문에 공주보를 닫으려는 공주시의 움직임이 보였다. 아직은 수문이 닫히지 않았지만 또 황포돛배를 띄우겠다며 축제 계획을 세웠다. 현장을 돌아보니 '백제문화이음길'이라고 정지산과 금강 사이 물가로 데크길을 설치하고 있는데 공주보 수문을 닫으면 잠길 위치다. 공주보 담수로 고마나루 모래사장을 다 망쳐놓고는 제민천에서 고마나루로 바로 갈 수 있는 데크길을 연결하니 참 한심하다.

이 현장을 보러갔던 나귀도훈(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은 현장에 갔다가 드론을 강 어딘가에 떨어트렸다. 명절 전부터 얼가니새(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와 근태양호(세종시민) 동지가 함께 가서 찾는 소동도 있었고 할아버지 활동가는 폭염에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참 일도 많다고, 달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서로 걱정을 나눈다. 농성장을 지키는 동료들과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밤은 고향집처럼 푸근하고 정겹다.

농성장은 명절 연휴여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다. 추석인데 어디 가지도 못하고 농성장을 지킨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이다. 매일 오겠다고 다짐하며 가는 이도 있었고 이참에 야간농성 같이 하겠다고 서울에서 달려온 활동가들, 식구들과 빚은 송편을 싸서 찾은 손길, 약과와 고구마, 과자와 음료로 평소보다 더 마음쓰는 손길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가위 보름달이 채워져가고 있다.
ⓒ 임도훈
농성장이 고향인 친구들이 있다. 금강에 사는 까치와 비둘기, 왜가리와 백로 그리고 삑삑도요, 알락도요, 청다리도요, 흰목물떼새... 도요새 친구들이 여기가 고향이라고, 너도 여기가 고향이냐고 묻는 듯 삑삑거리며 말을 건다. 여기가 고향인 생명들은 매일이 명절이고 가족들과 금강에서 보내는 추석 한가위다.

아직 꽉 차진 않았지만 채워져가고 있는 보름달의 모습이 보인다. 아름다운 금강을 그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명절 환한 달을 보고 눈이 밝아지기를 기도한다. 한가위 보름달이 채워지길 기다리며 우리 강의 안녕을, 강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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