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새로 들어온 문제적 신입... 왜 자꾸 신경 쓰이지
[김상목 기자]
'후지사와'는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징후가 보이던 'PMS(월경전증후군)'이 도지기 시작한다. 한 달마다 돌아오는 생리 직전에는 짜증을 참지 못해 평소엔 보이지 않던 공격성이 심해진다.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한다. 꿈에 그리던 직장에서 연거푸 사고를 저지른 후지사와는 고작 두 달 만에 제 발로 회사를 사직하고 만다. 가족과 주변의 이해로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던 시절이 아니니 막막하기만 하다. 당장 먹고 살 호구지책이 필요하다.
얼마 후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아동용 과학 교재를 만드는 직원 6명의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에 일자리를 얻는다. 오랜 가업으로 이어진 쿠리타 과학의 분위기는 대도시의 경쟁에 치이던 후지사와에겐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비교적 무탈하게 지내는 중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5년이 지났다.
쿠리타 과학에 새 식구가 온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회사인지라 제법 큰 사건인 셈이다. 신입 '야마조에'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로 겉돌기만 한다. 후지사와는 직무상 그런 야마조에와 거듭 대면해야 한다. 딱히 태업을 일삼거나 하진 않지만, 협조성이 결여된 후임의 행동거지에 후지사와는 오랜만에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오랜만에 벌어진 일이라 동료들도 당황하는 눈치다. 그럴 때마다 후지사와는 동네 과자가게에서 사죄의 뜻으로 간식거리를 사 가곤 한다.
한동안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서먹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조에가 급작스럽게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이를 계기로 후지사와는 그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병상련이 들어서일까, 후지사와는 후임에게 관심이 쓰인다. 별난 야마조에의 취향을 기억해 맞춤형 간식을 선물하고, 공황장애 증상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후임에게 쓰지 않던 자전거를 가져다준다. 야마조에 역시 월경증후군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 뒤 후지사와가 폭발 직전에 보이는 징후를 포착해 중화시켜주고자 애쓴다. 그렇게 둘은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 이미지 |
ⓒ ㈜미디어캐슬 |
외상도 없고 겉으로 보기엔 별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어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에 내몰리는 심리적 증상, 월경전증후군(PMS)과 공황장애를 각자 겪고 있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 그들이 한계를 이겨내거나 혹은 적응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일자리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할 숱한 과제가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강물처럼 유유히 흐른다.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줄곧 이어진다. '튀는' 사건이랄 게 딱히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 일어나게 마련인 사소한 충돌과 해프닝 정도가 전부다. 극적인 진행을 위해 써먹을 거리가 통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 각자가 품은 사연은 만만하지 않다. 주인공에 해당할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세상에 쉽게 꺼내지 못하는 각자의 질환도 알고 보면 묵직하지만,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는 듯 티를 내지 않고 묵은 상처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의 일화도 종종 뒤통수를 때리듯 관객의 방심을 파고든다. 그런 사연을 숨긴 이들이기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적응을 묵묵히 지켜보며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영화의 정조 속 품은 지향과 가치는 소심한 척 은은하게 설파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지금 세상의 무한경쟁 질서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의지를 확고히 선보인다. 현재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지만 오히려 작금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더 커 보이는 작업이다. 보편적인 인권 이전에 취업에 목매는 우리 현실이 외면하거나 놓치는 지점을 핀포인트로 저격하듯 보일 정도다. 딱히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데 신묘한 재주가 있다. 한국 사회 현실과 대조해가며 곱씹어보는 맛이 있는 영화다.
▲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 이미지 |
ⓒ ㈜미디어캐슬 |
이제 20대 중반인 한때 촉망받던 에이스 회사원 야마조에로선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공황장애를 친구처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만도 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웃들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권유가 바람결에 전해오는 듯하다. 그런 본질적 주제를 극적으로 소화하는 시간대 설정과 간격이 확연히 돋보인다. 그들이 순간순간 갑자기 닥치는 위기에 대응하는 작은 기술들이 눈에 들어오는 건 덤이다.
주인공들에 가려져 있지만,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현/전 직장 상사와 동료들 역시 개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한국의 평균적인 직장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내보내려 할 우선순위에 속할 주인공들이 사회에서 추방되지 않도록 관심과 애착을 놓지 않는 회사의 배려는 우연한 게 아니던 것이다.
'그리프 케어' 모임에서 사회적 재해의 유가족으로 만난 이들은 이심전심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아 묵묵히 고난을 겪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생존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극도로 원자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런 배려는 지극히 절실하고 필수적인 공동체 의식과 기능이지만, 정작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거나 개인의 선의에 떠넘기는 지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할의 소중함을 소리 없이 웅변하는 작업이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은은하지만 야무지게 솜씨를 뽐낸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공황장애와 후유증으로 인한 발작 연기를 벌일 때는 항상 의료진이 현장에 대기하고, '메소드 연기'를 펼치다 혹 일어날지 모를 돌발 사태를 방지하고자 배우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연기연습을 하지 못하게 당부했다는 후일담은 영화의 안과 밖이 동일한 태도로 진행됐음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화면 속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장면이 가능한 거였구나 하는 탄성의 순간들이다.
▲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 이미지 |
ⓒ ㈜미디어캐슬 |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우주'를 모사한 '플라네타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해설하는 풍경은 그런 주제의식을 화면 속에 세계의 진정한 면모인 양 구현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둘은 30년 전 '대선배'의 녹음테이프와 노트를 치열하게 복기한다. 그 '대선배'의 실체를 확인한다면 이들이 설파하는 우주의 매력이 그저 도피가 아니라 세상의 냉혹함과 맞서는 정면승부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식으로 유려하게 현재 한국 사회 '게임의 법칙'과 배치되는 첨예한 쟁점을 큰 소리로 고함지르지 않고도 할 말 다 해버린다. 이게 말처럼 쉬운 정리가 아니다.
<새벽의 모든>을 보고 나면 국내에 출간된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다시 한번 꼭꼭 씹어서 소화해 보고픈 욕망이 피어난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주변 캐릭터들이 은근 많이 늘어난 셈인데 전혀 산만하지 않고 제 역할 꼭꼭 소화해낸다. 그런 치밀한 설계는 너무나 인상적인 영화의 마무리 장면에서 풍경으로 구현된다. 마치 대가의 풍속화 속 도시나 시장 풍경을 보는 기분이다. 그만큼 원경의 멋이 근사하다.
해당 장면은 제목처럼 도시 교외 주택가 속 작은 공장의 아침 풍경이 시작될 뿐이다. 하지만 영화를 전부 보고 난 관객에겐 그야말로 감독이 전하고픈 메시지의 '결정적 찰나'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응축된 영화의 주제의식이 마지막 장면의 롱-테이크를 통해 소리 없이 활화산처럼 바로 눈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이 한 장면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2시간을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새벽의 모든> 포스터 이미지 |
ⓒ ㈜미디어캐슬 |
새벽의 모든
夜明けのすべて
All the Long Nights
2024 일본 드라마
2024.09.18. 개봉 119분 전체관람가
감독 미야케 쇼
주연 마츠무라 호쿠토(야마조에 타카토시 역), 카미시라이시 모네(후지사와 미사 역)
출연 시부카와 키요히코(츠지모토 노리히코 역), 이모우 하루카(오오시마 치히로 역),
후지마 사와코(이와타 마나미 역), 료(후지사와 노리코 역),
미츠이시 켄(쿠라타 카즈오 역)
원작 세오 마이코 - 소설 <새벽의 모든>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디오시네마
2024 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작
2024 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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