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55)
홍석원 2024. 9. 17. 12:32
세잔, 고갱 그리고 인간적인 에밀 베르나르
에밀 베르나르는 1888년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의 성 브리악에서 3개월간 머물렀다. 그해 8월 그는 퐁타벤에서 파나마와 카리브해 마르니티크를 여행하고 돌아온 고갱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었다. 고갱은 단순한 마무리와 풍부한 색을 알아보고 매우 좋아했다.
베르나르는 <사면>에서 중세 에나멜(칠보),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일본 판화, 에피날 이미지(Images d’Epinal) 등을 연구하여 창안한 새로운 기법을 구현했다.
에피날 이미지는 스텐실 기법의 목판화를 만들어내며 19세기부터 프랑스 에피날 지역에서 유래한 인쇄술이다. 이는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으로, 세세한 부분은 대담하게 생략하여 명암을 표현하지 않고 대신 검은 선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순수한 색으로 면을 채우는 기법으로 발전했다.
이 그림은 베르나르가 클루아조니즘을 적용한 중요한 작품이므로, 2019년 오르세 미술관이 구입했다. 그리고 원제는 <초원의 브르타뉴 여인들>이었지만 <사면>으로 바꾸었다.
겨우 20살인 베르나르는 1888년 9월 16일 퐁타벤에서 열린 대종교 축제인 ‘사면(Pardon)’에 참석한 뒤 이 그림을 그렸다.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고 고갱이 따라했다는 이야기가 중론이다. 그러나 고갱이 며칠 전 <설교 후의 환상>으로 ‘기억과 상상’을 결합한 ‘종합주의(Synthetism)’의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주장도 근래에 프랑스에서 제기되었다.
고갱과 베르나르의 예술적 협업관계는 서로 원조 시비가 붙으며 끝이 났다.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은 퐁타벤 화파의 리더로 20살이 많은 고갱에게 쏠렸다. 이후 클로아조니즘은 아를에서 공동작업을 하던 반 고흐의 화풍에도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퐁타벤의 브르타뉴 민속 의상을 입은 여인들은 방금 미사에서 신부의 설교를 들었다. 야곱이 가족과 함께 야복 강을 건넌 후 신비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한다는 창세기 구절이었다. 사과나무를 경계로 기도하는 여인들과 수사는 실제이고,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는 환상으로 그려진 고갱의 대표작이다.
고갱이 퐁타벤에서 그린 여인들은 황토색의 어두운 피부색에 투박한 입술로 프랑스 여인이 아니고 타히티의 여인들이다. 이 작품은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한국을 찾았다.
로트레크가 파리 코르몽 아틀리에서 만난 17살의 베르나르를 그린 초상화이다. 어리지만 선하고 따뜻한 심성이 엿보이는 초상화이다. 코르몽 아틀리에에는 루이 앙퀘탱, 반 고흐 같은 화가들이 있었다.
베르나르는1904년 2월 가족과 이집트를 다녀오며 마르세유 항을 지나게 되자, 인근 엑상 프로방스로 세잔을 찾아간다. 정확한 주소를 몰랐던 베르나르는 사람들에게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세잔의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서울에서 김씨를 찾는 격이었지만 소도시였기에 시청에서 선거인 명부로 겨우 찾아낸다.
세잔은 화가 시냑(Signac)이 보내준 베르나르의 글을 읽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베르나르는 이십 년간 존경했던 노스승과 함께 걷던 길에서 개구쟁이들이 돌을 던지며 세잔의 산적 같은 모습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친구도 없이 절대적인 고독에 빠진 노년의 세잔은 베르나르의 가족과 어울리며 한 달 동안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중에 한 번 더 방문하겠다는 베르나르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세잔은 그를 보내며 아쉬움에 기적이 울릴 때까지 기차역을 떠나지 못했다.
베르나르는 세잔과 한 달에 한 통 편지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후 세잔이 작업 도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평소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극도의 슬픔 속에서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예술이론을 신문에 기고하며 감춰지고 왜곡된 세잔의 진면모를 알리려 애썼다. 그는 세잔의 추도미사를 마련했고, 특히 <세잔에게 바치는 헌사>를 그린 화가 모리스 드니가 참석해 주니 무척 기뻐했다.
<세잔에게 바치는 헌사>는 왼쪽에 그림을 덮어놓았던 흰 천을 든 세잔의 화상인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이 그림을 그린 모리스 드니가 전면에 있다. 세잔의 예술적 성과를 그림에 반영하던 파리의 화가들인 오딜롱 르동, 에드아르 뵈야르, 피에르 보나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잔의 정물화가 놓인 이젤 아래에는 얼룩무늬 고양이가 눈을 사납게 치켜 뜨며 야수의 본능을 내비친다. 이는 평소 괴팍했던 세잔의 성품을 암시하고, 세잔의 그림이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곧 야수의 왕인 사자처럼 거장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 1879~80>은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에 있다. 이는 고갱이 소장한 세잔의 그림 석 점 중 한 점이다. 에밀 슈페네케르(Emile Schuffenecker)의 집에 얹혀 살만큼 형편없이 가난했지만, 고갱은 이 그림을 팔지 않았다. 슈페네케르는 고갱을 따라서 증권거래인에서 화가가 된 친구다.
고갱은 그 집에 신세를 지면서도 슈페네케르가 화가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무시하고, 그 부인을 모델로 세우고 유혹할 만큼 뻔뻔스러웠다. 고갱은 죽기 전 이 그림을 자세히 떠올리며 “세잔은 신이 내린 화가”라고 했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정물화와 '완성된' 풍경화들을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세잔의 근본은 선량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는 변덕스럽고 기이한 점이 있으며 번민을 일삼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예술가로서보다는 인간으로서 세잔에 더 큰 애정을 가졌다.
세잔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비평가들의 침묵, 친구들의 경멸, 동료 화가들의 무지 속에서 묵묵히 작업을 해야만 했다. 베르나르는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충실히 기록한 책 <세잔느의 회상>을 마흔살이 되어 펴낸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그와 생활한 기록을 남겨 세잔에 대한 일차 자료를 남겼다.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에밀 베르나르는 후기 인상주의의 세 거장 세잔, 고갱, 반 고흐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에밀 베르나르는 1888년 프랑스 브리타니 지방의 성 브리악에서 3개월간 머물렀다. 그해 8월 그는 퐁타벤에서 파나마와 카리브해 마르니티크를 여행하고 돌아온 고갱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었다. 고갱은 단순한 마무리와 풍부한 색을 알아보고 매우 좋아했다.
베르나르는 <사면>에서 중세 에나멜(칠보),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일본 판화, 에피날 이미지(Images d’Epinal) 등을 연구하여 창안한 새로운 기법을 구현했다.
에피날 이미지는 스텐실 기법의 목판화를 만들어내며 19세기부터 프랑스 에피날 지역에서 유래한 인쇄술이다. 이는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으로, 세세한 부분은 대담하게 생략하여 명암을 표현하지 않고 대신 검은 선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순수한 색으로 면을 채우는 기법으로 발전했다.
이 그림은 베르나르가 클루아조니즘을 적용한 중요한 작품이므로, 2019년 오르세 미술관이 구입했다. 그리고 원제는 <초원의 브르타뉴 여인들>이었지만 <사면>으로 바꾸었다.
겨우 20살인 베르나르는 1888년 9월 16일 퐁타벤에서 열린 대종교 축제인 ‘사면(Pardon)’에 참석한 뒤 이 그림을 그렸다. 베르나르의 그림을 보고 고갱이 따라했다는 이야기가 중론이다. 그러나 고갱이 며칠 전 <설교 후의 환상>으로 ‘기억과 상상’을 결합한 ‘종합주의(Synthetism)’의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주장도 근래에 프랑스에서 제기되었다.
고갱과 베르나르의 예술적 협업관계는 서로 원조 시비가 붙으며 끝이 났다.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은 퐁타벤 화파의 리더로 20살이 많은 고갱에게 쏠렸다. 이후 클로아조니즘은 아를에서 공동작업을 하던 반 고흐의 화풍에도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퐁타벤의 브르타뉴 민속 의상을 입은 여인들은 방금 미사에서 신부의 설교를 들었다. 야곱이 가족과 함께 야복 강을 건넌 후 신비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한다는 창세기 구절이었다. 사과나무를 경계로 기도하는 여인들과 수사는 실제이고, 야곱과 씨름하는 천사는 환상으로 그려진 고갱의 대표작이다.
고갱이 퐁타벤에서 그린 여인들은 황토색의 어두운 피부색에 투박한 입술로 프랑스 여인이 아니고 타히티의 여인들이다. 이 작품은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한국을 찾았다.
로트레크가 파리 코르몽 아틀리에서 만난 17살의 베르나르를 그린 초상화이다. 어리지만 선하고 따뜻한 심성이 엿보이는 초상화이다. 코르몽 아틀리에에는 루이 앙퀘탱, 반 고흐 같은 화가들이 있었다.
베르나르는1904년 2월 가족과 이집트를 다녀오며 마르세유 항을 지나게 되자, 인근 엑상 프로방스로 세잔을 찾아간다. 정확한 주소를 몰랐던 베르나르는 사람들에게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세잔의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서울에서 김씨를 찾는 격이었지만 소도시였기에 시청에서 선거인 명부로 겨우 찾아낸다.
세잔은 화가 시냑(Signac)이 보내준 베르나르의 글을 읽고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베르나르는 이십 년간 존경했던 노스승과 함께 걷던 길에서 개구쟁이들이 돌을 던지며 세잔의 산적 같은 모습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친구도 없이 절대적인 고독에 빠진 노년의 세잔은 베르나르의 가족과 어울리며 한 달 동안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중에 한 번 더 방문하겠다는 베르나르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세잔은 그를 보내며 아쉬움에 기적이 울릴 때까지 기차역을 떠나지 못했다.
베르나르는 세잔과 한 달에 한 통 편지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후 세잔이 작업 도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평소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극도의 슬픔 속에서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예술이론을 신문에 기고하며 감춰지고 왜곡된 세잔의 진면모를 알리려 애썼다. 그는 세잔의 추도미사를 마련했고, 특히 <세잔에게 바치는 헌사>를 그린 화가 모리스 드니가 참석해 주니 무척 기뻐했다.
<세잔에게 바치는 헌사>는 왼쪽에 그림을 덮어놓았던 흰 천을 든 세잔의 화상인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이 그림을 그린 모리스 드니가 전면에 있다. 세잔의 예술적 성과를 그림에 반영하던 파리의 화가들인 오딜롱 르동, 에드아르 뵈야르, 피에르 보나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잔의 정물화가 놓인 이젤 아래에는 얼룩무늬 고양이가 눈을 사납게 치켜 뜨며 야수의 본능을 내비친다. 이는 평소 괴팍했던 세잔의 성품을 암시하고, 세잔의 그림이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곧 야수의 왕인 사자처럼 거장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 1879~80>은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에 있다. 이는 고갱이 소장한 세잔의 그림 석 점 중 한 점이다. 에밀 슈페네케르(Emile Schuffenecker)의 집에 얹혀 살만큼 형편없이 가난했지만, 고갱은 이 그림을 팔지 않았다. 슈페네케르는 고갱을 따라서 증권거래인에서 화가가 된 친구다.
고갱은 그 집에 신세를 지면서도 슈페네케르가 화가로서의 재능이 없다고 무시하고, 그 부인을 모델로 세우고 유혹할 만큼 뻔뻔스러웠다. 고갱은 죽기 전 이 그림을 자세히 떠올리며 “세잔은 신이 내린 화가”라고 했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정물화와 '완성된' 풍경화들을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세잔의 근본은 선량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는 변덕스럽고 기이한 점이 있으며 번민을 일삼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예술가로서보다는 인간으로서 세잔에 더 큰 애정을 가졌다.
세잔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비평가들의 침묵, 친구들의 경멸, 동료 화가들의 무지 속에서 묵묵히 작업을 해야만 했다. 베르나르는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충실히 기록한 책 <세잔느의 회상>을 마흔살이 되어 펴낸다. 베르나르는 세잔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그와 생활한 기록을 남겨 세잔에 대한 일차 자료를 남겼다.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에밀 베르나르는 후기 인상주의의 세 거장 세잔, 고갱, 반 고흐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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