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이 '극장'에서 본 영화

양형석 2024. 9. 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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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

[양형석 기자]

 최민식은 <명량>의 이순신 장군 역할을 통해 뒤늦게 '천만 배우'에 합류했다.
ⓒ CJ ENM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가면 이 나라의 역사를 빛낸 최고의 위인 2명의 대형 동상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 중 하나로 꼽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동상이다. 세종대왕은 만 원권 지폐에 새겨진 인물이자 이미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역대 최고의 위인으로 꼽힌다. 그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에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세종대왕 동상에 버금가는 위인으로 꼽히며 광화문 광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16세기 말 조선의 명장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듯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용맹하게 우뚝 서 있다.

1970년대까지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2000년대 이후엔 청년 시절 이순신이 등장했던 <천군> 정도를 제외하면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던 2014년 <최종병기, 활>을 만들었던 김한민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최민식과 의기투합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뺨치는 해상 전투장면

<파이란>,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에서 열연을 펼친 최민식은 송강호, 설경구, 황정민, 이병헌 등과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우로 꼽힌다. 다른 배우들이 적게는 한 편, 많게는 3편 이상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최민식은 최고의 배우로 인정 받으면서도 2013년까지 커리어에 천만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그렇게 흥행성적에서 2%의 아쉬움이 있었던 최민식은 <명량>을 통해 무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단숨에 한국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배우로 올라섰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최민식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역을 소화하기 위해 그야말로 연기혼을 불사르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실제로 최민식의 열연이 없었다면 신드롬에 가까웠던 <명량>의 엄청난 흥행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명량>은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과 달리 평단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은 해전의 웅장함에 집중하느라 캐릭터들의 특징과 서사가 빈약해졌다는 혹평을 내렸다. 특히 이정현이 연기했던 정씨 여인이 치마를 흔드는 장면은 해전의 집중을 방해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작위적인 억지신파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인물들에 대한 분배 역시 썩 적절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명량>이 보여준 실감나면서도 몰입감 높은 해전의 완성도는 할리우드의 해전영화들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관객들의 애국심과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최민식의 명연기와 김한민 감독의 적절한 연출 역시 <명량>의 장점이었다. <명량>은 흥행뿐 아니라 대종상 작품상과 청룡영화상 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대상(최민식)을 휩쓸면서 2014년을 지배했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이 공전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순신 3부작의 제작 계획을 밝혔고 긴 준비 끝에 2022년 <한산:용의 출현>과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를 선보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인 2020년과 2021년에 촬영한 <한산>과 <노량>은 각각 박해일과 김윤석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다만 <노량>은 457만 관객을 동원하고도 700만에 달하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명량>에선 다소 낯선 신인배우였던 박보검은 1년 후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 CJ ENM
천만 영화 깔고 커리어 시작한 배우

천만 관객을 모은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번방의 선물>에 차례로 출연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류승룡은 <명량>에서 이순신에 맞서는 명량해전 왜군의 선봉장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해적왕'으로 이름을 날린 구루지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임명한 인물로 중반까지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하지만 이순신과 처음 대면한 순간 이순신의 검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류승룡과 마찬가지로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조진웅은 <명량>에서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해 한 발 뒤로 물러선 명량해전의 중군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을 맡았다. 와키자카는 선봉에 선 구루야마가 이순신 장군과 조선군의 신묘한 작전에 당하는 장면을 보고도 지원을 하지 않고 관망만 하다 뒤늦게 진격 명령을 내렸지만 이순신에게 똑같이 당한다.

<명량>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캐스팅은 바로 진구와 이정현이 연기했던 임준영과 정씨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조선의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들과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어 이야기의 맥을 끊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임준영과 정씨여인은 굳이 진구, 이정현처럼 유명한 배우들이 맡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인물들이었다.

선한 인상과 착한 성품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로 성장한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로 스타가 되기 전 이미 <명량>을 통해 천만 배우가 됐다. 박보검은 <명량>에서 왜군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순신 장군에게 배에 태워 달라 간청하는 배수봉 역을 맡았다. 수많은 조연 중 하나였지만 배수봉은 전투가 끝난 후 이순신 장군에게 토란을 가져다 주며 나란히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영광을 누렸다.
 <명량>은 176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0년째 역대 흥행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CJ ENM
같은 세계관 공유하는 한국영화 3부작

할리우드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이나 <다크 나이트> 3부작처럼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해 제작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다. 반면에 한국 영화는 아직 전편의 흥행성적에 따라 속편 제작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3부작 영화가 만들어지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한국 영화 중에서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3부작 영화들이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때가 있다.

사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3부작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다.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세계관도 다르고 주인공도 다르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 역시 <올드보이>를 완성한 후 "차기작도 복수영화인가요?"라는 한 기자의 질문을 듣고 차기작을 복수극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 중에서 감독과 주연, 세계관 등이 일치했던 첫 번째 3부작은 역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3부작이었다. 물론 <장군의 아들> 역시 1편의 흥행에 힘입어 2 ,3편이 만들어진 시리즈였다. <장군의 아들>은 1편을 만들었던 임권택 감독이 3편까지 모두 메가폰을 잡았고 김두한 역의 박상민과 하야시 역의 신현준, 김동회 역의 고 이일재 등 주요 배역들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3편에서 감독이 바뀐 아쉬움이 있었지만 <투캅스> 역시 3편까지 제작되면서 꾸준히 같은 세계관을 유지했다. 특히 1편에서 신참이었던 강민호 형사(박중훈 분)가 2편에서 후임을 받는 베테랑 형사가 되고 2편에서 신참이었던 이형구 형사(김보성 분)가 3편에서 선임형사가 된다는 유쾌한 설정으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3편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4편 제작은 끝내 무산됐다.

허영만 화백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타짜>는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 동안 3편까지 제작되면서 감독과 주인공이 계속 교체됐다. 1편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의 조카 함대길(최승현 분)이 2편의 주인공이 되고 짝귀의 아들 도일출(박정민 분)이 3편의 주인공이 되는 원작의 설정은 끝까지 지켰다. <타짜> 역시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완성도와 재미가 떨어진다는 혹평 속에 성적도 점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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